[박명기 신부] 3월 15일(사순 제4주일 ) 요한 3,14-21.

오늘부터 매달 첫째, 셋째 주일 강론은 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국 박명기 신부(다미아노)께서 맡아 주십니다. 박명기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환한 태양 아래 있다가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면 순간적으로 온통 어둠뿐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앞이 캄캄해지니 움직일 수조차 없다. 그럴 때 두 눈을 감고 잠시 기다렸다가 눈을 뜨면 조금씩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나고 주변을 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환한 햇빛 아래만큼은 아니어도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지내는데 익숙해진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어느 것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어둠으로 가려진 빛과 색만 보인다는 것이다.

조금만 움직이면 빛이 보인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햇빛을 받으며 환하게 지내던 것을 조금씩 잊어간다. 내려진 커튼을 올리고,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젖히기만 해도 환하게 제 빛과 색을 볼 수 있는데, 움직임이 귀찮아 어둠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밝고 환한 세상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둠에 있기 보다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빛의 세상으로 나오기를 원한다. 명확하고 환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둠에 익숙해져 사는 자와, 빛으로 나가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사람의 삶은 차이가 난다. 전자는 어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빛을 원하지 않고, 후자는 늘 빛을 향하고 결국 빛으로 나아가게 된다.

어둠의 구체적인 모습

어둠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하느님의 의로우심과 진실, 생명의 존엄과 고귀함, 환하고 밝은 긍정의 빛과 색을 보지 못한다. 그곳은 집단 이기와 자신의 안위만을 지향하는 극도의 이기주의로 가득 찬 곳이다. 생명을 해치더라도 얻어야 하는 이윤의 극대화가 우상으로 숭배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며, 희미하고 불투명한 온갖 파렴치함으로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현재 자신의 처지와 상태가 명백하고 환하게 드러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어둠이다.

때문에 온갖 부정과 불의가 서로를 얽어매고 있으며 이기와 재물이 서로의 발목을 잡고 목을 죄어 오는 곳이기에 선뜻 벗어나지도 못하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빛의 세상에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어둠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치 평생을 그 어둠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려 다짐한 사람들 같다.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환한 세상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비록 세상은 불의한 어둠이 빛을 가리고 뒤덮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빛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빛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어둠 속에 사는 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어둠 속 아주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가녀린 빛살만 가지고도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죄에서 돌아선다는 것은 그렇게 내가 살았던 빛의 세상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작은 빛살이 내 삶의 어둠을 헤집고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빛 안에서 환하게 보면 어둠에서 보았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을 빛의 자녀라 부른다. 빛이신 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의 어둠에 필요한 빛이 되기 위해 어둠을 찾아 나서는 삶이기 때문이다.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살기에 잠시의 어둠에 빠진다 해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거나, 빛의 세상을 기억하며 어둠을 박차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삶을 교회는 회개라고 부른다. 사순절은 어둠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진 사람의 아들을 바라보는 회개의 삶을 통해 빛으로 나서라고 촉구해야 하는 시기이다. 아니, 신앙인 자신이 어둠에서 빛으로의 회개를 통해 어둠에 있는 이들에게 빛으로 나서는 삶을 보여 주는 시기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외아들을 내주시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선포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어둠에서 빛으로, 불의에서 정의로, 거짓에서 진실로, 경시에서 존엄으로, 이윤에서 생명으로, 이기에서 섬김과 나눔으로, 희미함에서 명백함으로 나서는 회개의 삶이 요구된다. 특별히 시대의 어둠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빛의 삶으로 돌아서라고 촉구하며, 우리는 빛의 자녀다운 삶으로 이 사순시기를 보내야 할 것이다.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