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채프먼 저, 주낙현 역, "성공회-역사와 미래", 비아, 2014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세상 속에 파견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전례 없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역사적 공의회로 평가 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분명한 교회적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교회의 분열로 인한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1항)시켜 온 책임을 통감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형제들, 즉, 동방정교회와 서방의 개신교와의 일치를 회복하고 재건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한 데 있다.

갈라진 형제들 가운데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첨예한 역사적, 신학적 대립의 중도에서 교회 일치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교단으로 ‘성공회’(Anglicanism)를 꼽을 수 있다. 성공회(聖公會)란 교단 명칭은 전통적 신경인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Holy Catholic Church)에서 따와서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쓰인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교감독제 교회란 의미에서 ‘에피스코팔 처치’(Episcopal Church) 혹은 서방의 종교개혁을 통해 영국에서 개혁된 독자적인 교단의 의미로 ‘앵글리칸 처치’(Anglican Church)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는 1890년 영국 해군 군종신부인 주교 고요한이 파견된 뒤 1893년 강화도에서 본격적인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현재 ‘대한성공회’란 이름으로 100여 개 교회에 5만여 명의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투신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성공회

▲ 마크 채프먼 저, 주낙현 역, "성공회-역사와 미래", 비아, 2014.(사진 제공 = 비아 출판사)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의 간략한 입문서 시리즈로 나온 ‘성공회-역사와 미래’는 옮긴이의 말대로 “그리스도교의 한 신앙 전통으로 우뚝 선 성공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쌀쌀맞을 정도로 객곽적인 시선”으로 살피며, “영어권 신학교와 신자 교육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필독서”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이 책은 성공회를 단순히 영국에서 헨리 8세의 이혼논쟁으로 촉발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령(首長令), 즉 로마 사도좌로부터 분리하여 영국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으로 규정한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두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저자인 마크 채프먼은 “성실한 연구자의 시각으로 한 교회 전통에 터를 둔 역사와 신학을 매우 간명하게 서술한다. 그러면서도 시대와 상황 안에서 살아 움직이던 사람들의 고민과 응답을 그들 목소리로 전달하고 교회의 선교, 활동에 담긴 갈등과 해결을 면밀하게 보여 준다.”

성공회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학적 논쟁으로 분열을 겪은 루터교나 장로교와는 달리 신앙과 교회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고, 진정한 신앙적 권위와 교회가 지닌 자율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성공회의 독특한 중용적 입장(via Media)의 역사적 유래와 현실적 적용에서 나오는 생생한 발자취를 보여 준다.

그 생생한 발자취는 종교개혁 이후 영국 역사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신앙을 지지하는 서로 다른 정치적 수장들의 종교적 독단과 편견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는 어느 한 교회에 유보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자율적 권위에 따라 진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발견된다는 겸손하면서도, 때로는 중도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독특한 성공회의 특색에서 나타난다.

상상하는 가톨릭, 실현하는 성공회

교회 일치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필자로서는 간혹 결혼한 성공회 신부나, 여성 사제를 만날 때, 같은 성직자 복장과 용어를 사용하고, 공동번역 성경을 함께 읽고, 비슷한 성당 구조와 전례, 심지어 타 교파나 이웃종교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는 성공회에 묘한 호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가톨릭에서 상상하는 것은 성공회에서 다 이루어진다는 농담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책은 성공회가 다양한 신앙 전통과 신앙의 개성을 무시하지 않고,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라고 불리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성공회-역사와 미래”는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성공회에 대한 기초적 연구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오늘날 성공회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는 윤리적 질문들을 통해 성공회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 성공회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와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1장)을 시작으로, 국민교회로서의 성공회의 발단이 된 정치와 신학의 관계(2장), 성공회 신앙의 특성이 형성된 과정들(3장), 신앙 체험을 토대로 발생한 영국식 복음주의 운동(4장)과 반대로 교회의 전통에서 가톨릭과 대화를 시도한 성공회-가톨릭주의 운동(5장), 그리고 세계 선교를 통한 성공회의 독특한 ‘친교’(communion)적 방식의 유대감(6장), 지역교회의 자율성에 토대를 둔 신앙에서 발생한 선교적 과제들, 가령 토착화, 교회일치운동, 여성사목직, 동성애 문제(7장) 등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가톨릭 교회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보편교회 차원에서 교회 일치운동을 공의회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추진해 온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국식 복음주의에 뿌리를 둔 한국 개신교의 복음주의와 보편적 복음화보다는 배타적인 개별교회의 성장에 몰두하여 상호 분열과 비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성공회에 대한 이해는 분열을 극복하고 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역사적 지혜를 엿보게 한다.

성공회는 ‘중도’(via Media)란 이름으로 다양성을 수용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회적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단일한 교회적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권위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적 전승의 단일성을 이루지 못하는 정체성 논란과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는 남겨진 과제로 보인다.

교회 일치 운동에 관심을 갖고, 성공회를 통해 지역 교회가 세계 교회로 발전하는 독특한 역사를 공부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송용민 신부(요한)
인천교구 사제.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신학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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