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고통을 마음에 담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말씀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밝혀 준다. 또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말씀은 오늘날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꿰뚫는 그리스도인의 시각과 통찰을 드러낸다.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분석과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두 말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교리를 드러내 주는 열쇠 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분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것을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전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 2013년 9월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 기도회.ⓒ지금여기 자료사진
가톨릭 사회교리 전통에 의하면,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는 한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공동의 이익, 즉 공동선을 증진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공동선이고, 공동선을 증진하지 않는 국가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가 중립적이거나 공평한 입장에 서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교회 역시 잘 알고 있다. 한 사회 안에서는 특수한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을 가리켜 사회교리는 “폐쇄된 지배자들의 집단”('백주년' 46항)이라고 부르며, 교회가 이들에게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현실 사회는 이렇듯 언제나 이해관계를 중심에 둔 사회세력들 간에 벌이는 갈등의 자리다. 다양한 사회세력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이 정치인데, 한 사회세력이 지나치게 커지고 힘이 세어지면 조정과 중재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 지속적으로 독점세력 비판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는 다양한 사회세력 가운데 경제적 영역의 독점세력이 형성되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비오 11세의 '사십주년'에 의하면, 무제한적인 자유 경쟁의 자연적 귀결로 권력의 집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권력은 첫째로 경제 영역 자체의 독점권으로, 그 다음으로는 국가의 자원과 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력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국가 간의 충돌로 발전된다고 분석하였다. 지금부터 80년 전 교황의 통찰이 놀랍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쁨과 희망'에서도 “경제 발전은 인간의 통제 아래 머물러야 한다. 과도한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강자나 그러한 강자 집단의 전제에 맡기거나 한 정치 단체나 어떤 강대국의 전제에 맡겨서는 안 된다”(65항)고 가르치며 경제적 독점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독재”를 이해해야 한다. “복음의 기쁨”에 의하면, 오늘날 배척의 경제에 의해 엄청난 사회적 불평등이 생겼고, 이러한 불평등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 불평등의 뿌리는 시장의 절대적 자유와 금융 투기를 옹호하는 이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이념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척하고 소외시킬 뿐 아니라,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하는 국가의 통제권마저 배척한다. 그럼으로써 이 이념은 국가의 기능을 넘어서는 ‘새로운 독재’로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교도권의 사회분석이 국가의 역할과 경제적 독점 세력 사이의 갈등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다. 그리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향점이 다르다. 즉,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을 압도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상대에 부과한다면 민주주의는 존립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갖는 평등의 원리가 극대화되면 시장경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무제한적으로 확장될 수 없고, 경쟁의 승자인 부자들만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없도록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적절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규제를 가할 수 없을 때, 즉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로 변하는 것이다.

설 명절에 여러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풍요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풍요에서 제외되어 있고, 또 그만큼 힘들게 살아간다.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아가는가? 왜냐하면 결국은 자본주의에 규제를 가하는 건강하고 튼튼한 민주주의를 우리가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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