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에 집중해야

재의 수요일인 2월 18일부터 부활 전까지 사순시기를 지내며, 판공성사의 시기도 맞게 된다.

사진 출처 = www.flickr.com
해마다 두 번 성탄과 부활을 앞두고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는 신자들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죄의 고백에 대한 두려움, 고백 뒤에 오는 용서와 화해의 기쁨이 교차되는 짧은 시간이면서도, 때가 되면 ‘냉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신자수가 많은 본당의 경우, 신자들은 물론 사제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다.

성사 시간마다 감당해야 하는 긴 기다림은 기본, 웬만하면 아는 신부님에게 고백하지 않기 위한 눈치 작전, 뒤로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므로 시작하자마자 성사를 봐야 한다는 지침이 등장하는가 하면, 부담감에 미루다 결국 끝에서야 어렵게 하거나 못하게 된다는 고백이 따르기도 한다.

판공성사에 대한 신자들의 구체적인 고백을 들어보자.

“성사표를 들고 의무방어를 하는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의 성사임에도 모든 신자가 한꺼번에 성사를 보게 되니,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판공성사 시간 배정이 신자들의 생활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해성사 자체가 너무 어렵다. 어떻게, 어디까지 고백해야 할지, 간단하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해야 할지 신부님마다 반응도 다르다. 준비해 간 내용을 읽었더니, 성의가 없다고 혼난 적도 있다.”

기본적으로 고해성사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토해내기도 하고, 의무감이 앞서는 마음이나 충분치 못한 성사 내용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성사를 보고 나면 마음도 정리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다양한 반응, 부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은총의 선물인 성사를 더 잘 드리고 싶다’는 바람이 보인다.

판(判), 판단하다
공(功), 공로

판공성사는 신앙 안에서 얼마나 공로를 갖추었는가를 성찰하고 판단하는 성사며,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보편 교회법(교회법 920조와 989조)은 고해성사에 대해 “일년에 적어도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해야 하며, 이 영성체는 부활시기에 이행되어야 한다”고 이른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교회법을 바탕으로 부활과 성탄 시기를 앞둔 사순과 대림 시기에 의무적으로 판공성사를 하도록 했다.

판공성사는 다른 고해성사와 달리, 성사표를 가진 신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인데, 성사표를 소속 본당에 제출하는 것으로 신앙생활 여부를 파악하는 사목적 필요도 따른다.

하지만 ‘공’을 헤아린다는 단어의 뜻과는 다르게 고해성사, 판공성사는 죄를 스스로 알아내고 또 고백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성사다. 성탄과 부활이라는 축제를 앞두고 성찰과 화해를 통해 맞갖는 준비를 위한 판공성사지만, 정작 신앙생활의 하한선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의 기준이 “판공만”, 또는 “판공이라도”가 되는 것이다.

한국주교회의는 지난 201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한 ‘주일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방안’에서 고해성사와 관련, “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일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고 정했다.

이는 “고해성사를 단지 무거운 의무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영적 유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판공성사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의 특별한 관행인 판공성사 제도가 그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의 형식화를 초래하고, 냉담 교우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되었다. 이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며, 기존 판공성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요청된다고 밝힌다. 

이러한 주교회의 결정에 앞서 2013년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가 제안한 내용, “일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했다면 판공성사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하자”는 것에 대한 각 교구별 토론 자료를 내놨다.

복음화위원회의 제안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고해성사의 의무에 관한 규정(제 90조), “모든 신자는 일년에 적어도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해야 한다. 이 영성체는 원칙적으로 부활 시기에 이행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삼위일체 대축일까지 연장하고 있으므로, 이때에 맞추어 판공 고해성사도 집전되어야 한다”와 “부활 판공 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라도 받아야 한다”를 다시 해석한 것이다. 올해 재의 수요일은 2월 18일이고 삼위일체 대축일은 5월 31일이다.

이 토론 자료에 따르면 사목자와 신자들이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제안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찬성 63.6퍼센트) 찬성 이유는 “신자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 준다, 고해성사 형식화를 바꾼다, 냉담교우를 상당수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신앙적 전통 유지 필요, 신앙생활 해이 우려, 판공성사의 긍정적 역할 상실, 열심한 신자들에 대한 왜곡된 영향, 사목상 신자 관리의 어려움 초래” 등이 반대 의견으로 나왔다.

더불어 고해성사 활성화를 위해서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가 제시한 사목적 제안은 “고해성사에 대한 신자 재교육, 고해성사를 위한 특정일이나 주간 지정, 참회 예절과 고해성사 병행, 면담식 고해성사를 위한 배려, 상설 고해소 마련”등 7가지로 이에 대한 전반적 찬성과 부분적 찬성은 52.1퍼센트였다.

고해성사 활성화 방안에 대한 기타 의견으로는 “성사 기피 원인을 분석 필요, 성사를 주는 사제의 태도 쇄신, 고해성사 전담 사제나 심리상담소 전담 사제 양성 등이 제시됐다.

서울대교구 이승민 신부는 고해성사에 대해 보편 교회법에는 적어도 부활 즈음에 한 번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최소한을 말하는 것이며, 더 많이 성사에 임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면서, “한국교회의 판공성사 전통은 사목적 필요와 신자들의 영신적 이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 신부는 고해성사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신자들에게 죄가 아닌 용서와 화해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한다면서, “고해성사라는 말 역시 고백과 화해, 고백함으로써 화해하는 것을 뜻한다. 화해는 그 어떤 것도 포용하고 누군가를 언제나 안아줄 수 있는 준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고백성사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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