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28]

얼마 전에 귀농한 지 1년이 채 안 된 초짜 농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럿이 함께 모인 자리였는데 나 빼고 대다수는 귀농을 동경하는 젊은 아줌마들이었다. 초짜 농부는 그이들을 상대로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귀농 예찬론을 펼쳤다.

"시골 사니까 생활비가 확 줄었어요. 도시에서처럼 폼 나게 입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옷 값 거의 안 들죠, 애들 교육비도 나라에서 전액 지원됩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키 캠프를 갔는데 부모 부담 전혀 없었어요. 반면 돈 벌 기회는 도시보다 오히려 많아요. 항상 일손이 딸리는 형편이니까 젊은 사람이 일 하고 싶다면 서로 오라고 난리죠. 저는 지난 봄에 트랙터 운전 좀 하고 하루 12만 원씩 벌었어요. 몇 주 고생하니까 몇 백은 쉽게 벌리더라고요...."

물 흐르듯이 쏟아지는 유창한 말솜씨였다. 듣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돈 벌기가 쉽다고? 에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우리 마을 할머니들에게 그 얘길 고스란히 전해 준다면 모르긴 몰러도 욕을 태배기로 얻어먹을 거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시골에서 돈 벌어 볼래?

그의 말에 빨간 펜을 들고 고쳐 말하기 작업을 해 본다면.... 시골에 살면 생활비가 적게 드는 건 사실이지만, 돈을 쓰려고 들면 돈 쓸 일은 여전히 많다. 욕망에 바람을 빼야 비로소 생활비가 대폭 줄어든다. 문제는 아무리 적은 돈이라 해도 벌기가 녹록치 않다는 것.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하는 품팔이 노동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의 벌이도 어려울 뿐더러 몸은 몸대로 상한다. 특히 몸 쓰는 일에 익숙지 않은 도시인의 몸이라면 일손이 되기는커녕 괜히 민폐를 끼치기 십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수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겠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9년쯤 전, 당시에 난 친구랑 둘이서 시골살이를 경험해 보겠다고 합천에 있는 산골 마을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귀농 첫해이기에 물정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설매실 할머니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게 된다.

"밤 주러 갈래? 나무 밑에 쏟아진 기 고거만 살살 줍다 오믄 된다."
"밤 줍기요? 와, 재밌겠다."

친구와 나는 용돈 벌이도 하고 재미난 경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설매실 할머니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 할머니들과 함께 짐차 뒤에 몸을 싣고서 말이다. 초가을 이른 아침 공기는 제법 싸늘했지만 밤나무가 빽빽한 밤 숲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잔뜩 들떠 있었다. 다람쥐라도 마주치려나 싶고, 나무 그늘 아래서 윤기 나는 알밤을 오독오독 씹는 즐거움을 상상하기도 했다.

시골 노동,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하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몇몇 할머니의 눈길에선 걱정이 묻어났다.

"아가씨들이 우째 이런 일을 할라꼬. 할 수 있겄나?"
"이 아가씨들 일 잘 한다. 내가 맥없이 데꼬 왔으까이."

설매실 할머니가 나서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든든했다. 한편, 어깨가 무겁기도 했다. 설매실 할머니 말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니 말이다. 나는 일할 채비를 확실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작업용 모자를 둘러쓰고, 밤 줍기 전용 장갑을 끼고, 밤을 주워 담을 비닐 포대도 챙겨 들고! 이제 밤나무 밑에 쏟아져 있는 밤을 부지런히 줍기만 하면 되리라. 보라, 초입에서부터 벌써 수많은 밤알들이 쏟아져 있지 않은가. 그럼 준비, 시작!

일할 시간이 되자 할머니들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나름 속도를 냈으나 할머니들 손놀림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줍기 쉬운 평평한 자리는 내가 차지할 몫이 없어서 비탈진 자리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는데, 온통 밤송이 투성이인 곳이라 넘어질 때마다 "앗, 따가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살을 찌르는 고통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중천에 떠오른 햇살에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밤이 담긴 포대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무거운 포대를 끌고 다니며 허리를 숙여 밤을 줍기란 고행 그 자체였다. 산길을 수십 번씩 오르내리려니 무릎은 쑤시지, 허리는 감각이 없을 정도로 뻐근하지.... 잠깐 쉬고 싶어도 다른 할머니들 기세에 눌려 도저히 쉴 수가 없어 밤 줍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함께 일하던 어떤 할머니가 나무에 기대 선 채로 오줌을 누시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구부리고 앉을 힘조차도 없으셨던 거다. 그걸 보고 작업반장이었던 설매실 할머니는 "그래 아프믄 나오지 마라."며 미운 소리를 하시고, 다리 아픈 할머니가 "내가 아프다꼬 일을 몬 했나 딴 사람한테 신세를 졌나. 오줌 그래 싼 거 가꼬 와 그카는데...."라며 서운함을 토해내며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할머니들 사이에서 누가 꾀를 피우면 즉시 핀잔이 오고 가며 큰 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나를 비롯해서 모두들 욕먹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일을 하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그러니 새참 시간 10분, 점심시간 1시간 남짓은 정말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할머니들 사이 분위기도 다시금 부드러워져 우스갯소리가 오고 가고 서로 먹을 것을 챙겨 주며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고행이 시작된다 생각하면 몰래 달아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장면은 점심 먹은 뒤 할머니들이 너나없이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꺼내 드시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일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삭신이 다 쑤시는 마당이니 진통제라도 없으면 고된 노동을 견뎌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릎, 허리, 어깨 등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시는 분도 있었다. 참으로 눈물겹고 처절한 광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돈 몇 만 원을 손에 넣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그날 하루는 지금 생각해도 참 길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서 받은 돈 4만 원. 그걸 받아 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할머니들과 비교했을 때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돈을 똑같이 받으려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럼에도 며칠 더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자 숨이 컥 막히는 것 같아서 갖은 핑계를 대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시골 할머니와 나는 뼈부터 다르다

그날 이후로 차마 거절을 못 해서 몇 번인가 더 집단 노동에 투입된 경험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비슷했다. '육체노동에 잔뼈가 굵은 할머니들과 나는 몸 자체가 다르다. 할머니들이 하는 일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고, 품팔이로 용돈 벌이 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자. 정 일을 도와야 한다면 돈 받지 말고 내 힘닿는 만큼만 도와 인심이나 쌓자.' 말하자면 눈물겹고 잔혹한 프로의 세계는 감히 넘보지 말자는 판단을 내렸다고나 할까?

어디서건 돈 버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몸으로 돈 버는 일명 '노가다'는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나 되니까 진통제 먹어가며 악착같이 해 내는 것이다. 그 돈 벌어서 집에 오는 손주 녀석들 손에 단돈 만 원이라도 쥐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요새 아들은 그전멘키롬 할매 할배한테 정 없따. 돈이라도 줘야 좋다카제 안 그라믄 찾아오도 안 한다 아이가."
"맞다. 이래 살살 돈을 벌어 놔야 손주들한테 인심도 쓰고 그카제 돈 없으믄 어른 대접도 몬 받는 시상이다. "
"하모!"

그날 점심시간에 나누었던 할머니들 사이 대화가 아직도 어렴풋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세월이 꽤 많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작업 환경이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시골에 돈벌이가 많다고? 설사 그 말이 참말이라고 하여도 그 돈이 골병하고 바꾸는 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누군가의 뼈 빠지는 노동에서 온다는 사실도.
 

정청라
귀농 10년차, 결혼 8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