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웹사이트는 교황청과학원이라는 부서 명의로 2009년 5월 로마에서 있게 될 소식을 실었다. 곧 “식량 확보를 위해 개발중인 유전자 변형 작물”에 관한 연구 주간이 그것이다.

이는 칭찬할 만한 일로 보이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일방적으로 유전자 변형 작물을 선전하는 켐페인이다.

오보는 양팔을 벌리고 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진이 실린 2페이지부터 시작된다. 온 세상을, 나아가 새로운 과학 기술을 감싸 안으려는 모습 같아 보인다. 하지만, 본문을 읽다 보면, 분명 교황은 세계의 경제 위기가 가난한 이들의 식량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염려하고 있을 뿐, 유전자 변형 작물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다.

주제와 발표자들을 보면 39명의 기고가 중 18명이 미국 출신이다. 추천되고 있는 미국의 농업 모델은 인도나 필리핀과 같이 세계 대다수 국가의 실정에는 거의 맞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미국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미국의 감옥에 갇힌 사람이 더 많다. 이러한 모델은 기계와 화학 비료를 어마어마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모델이 인도와 중국에 재현된다면, 현재 땅을 일구고 있는 수많은 농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최근 수십 년간 미국 농업의 방향은 농부들에게 씨앗과 농약을 팔아 부를 축적한 거대한 농산업 기업에 좌우되었다.

확신컨대, 연구 주간의 모든 연설자가 유전자 변형 작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군인도 있다.

이른바 과학원이라는 기관이 양측 대표들도 부르지 않은 채, 유전자 가공 보존 식료품과 같은 말 많은 문제를 놓고 논의하는 행사를 치를 것이라니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며 이미 받아들여진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플라톤 이래 유럽 학계의 전통이다. 이는 열띤 논쟁이라는 문화를 일으켰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학문의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통찰을 얻게 하였다. 학문의 커다란 진보는 스스로 고쳐나가는 비판적인 방법론 덕택이다.

마케팅, 선전, 광고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사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나 특별한 요구를 할 여지나 기회가 없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논의는 지구상의 인류 복지에 매우 중요하다.

발표자들이 발제문 초고에도 밝혔듯이, 연구 주간에 계속될 주장은 유전자 변형 작물이 굶주리는 이들을 먹이고, 빈곤을 퇴치할 수 있으며,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현재의 규제 정책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몬산토와 같은 강력한 농산업 회사와 미국 정권이 계속해서 유전자 변형 작물을 세계 대다수 국가에 강요하고 있는 게 사실인데도, 발표자들은 그들이 오히려 어떤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인양 우리를 설득하려 든다. 자신들을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어린 다윗에 견주고 있다.

오늘날 생물 공학 산업은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처럼 묘사된다. 꼭 수도원 밖의 성 빈센트 드 폴회처럼 가난한 이들을 먹이는 데만 열중하는 것 같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말에 솔깃하는 사람들이라면, 퓰리처상 수상자 도날드 L. 바틀렛과 제임스 B. 스틸이 몬산토의 실상에 대해 쓴 2008년 5월호 <허영의 시장>에 난 기사를 읽어야 한다. 제목과 부제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두려움을 거두는 몬산토; 소농을 겨냥한 무자비한 법적 싸움, 몬산토와 대규모 농기업이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바로 이윤이다.”가 그것이다.

교황청 과학원은 미래의 식량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그 보편성이다. 전세계 수많은 기업과 활동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교황청 과학원 원장 마르셀로 산체스 소론도 주교는 국제 까리타스나 영국의 가톨릭 해외 발전국과 같은 가톨릭 개발 기관 또는 필리핀 주교회의 사회기관인 전국 사회활동 사무처의 전문가들에게 유전자 변형 작물이 빈곤을 퇴치하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데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문의를 했어야 했다.

번역/김미경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2.17. 숀 맥도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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