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27]

 "어머, 생긴 것도 더럽게 못생겼네."

애꿎은 개가 무슨 잘못이겠냐마는 한평 할머니 집 댓돌 옆에 묶여 있는 사냥개를 도저히 고운 눈길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분명 뒷집 아저씨가 은근슬쩍 맡기고 갔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뒷집 아저씨는 늘상 이런 식이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을 은근슬쩍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린다. 본인이 사냥을 좋아해서 사냥개를 키우는 건 말릴 수 없는 일이라 치자. 하지만 그걸 왜 다른 집에 맡겨서까지 키울 생각을 하느냔 말이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한두 번 당하는 게 아닌데도 번번이 아저씨의 부탁에 넘어 가고야마는 한평 할머니와 어르신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 개 뭐예요? 뒷집 아저씨가 갖다 놓은 거 맞죠?"
"아녀. 우리 개여."
"에이, 다 아는데 뭘 그래요."
"아자씨가 우리 준다고 했어. 돼아지 잡으러 갈 때만 쓴다고...."

한평 할머니는 끝내 뒷집 아저씨를 두둔하셨다. 분명 뒷집 아저씨가 돈 몇 만 원 찔러 주며 할머니를 구워삶았을 것이다. "이것이 겁나 비싼 개여. 이 집에 있는 똥개랑은 족보부터가 다르당께. 공짜로 줄 텡께 고찰 잘 해야 돼아. 난중에 나 사냥 나갈 때 몇 번만 쓸랑께. 알았제?"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간의 뒷집 아저씨 행적을 봐선 안 봐도 비디오, 건너만 봐도 구천 리다.

그러니까 지난봄에도 뒷집 아저씨는 한평 할머니 집에 사냥개를 맡겼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아직 어린 강아지들이었는데, 밥 챙겨 주는 조건으로 돈 3만 원 찔러 주고 자기는 공사 현장에 물차 대주는 일을 하러 외지로 나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개 세 마리가 며칠 상간으로 모두 죽고 말았다. 뭘 잘못 먹은 건지 먹은 것을 토해내고 죽었다는데 뒷집 아저씨가 그 사실을 알고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술만 먹었다 하면 한평 할머니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가 한 번은 한밤중에 돌을 던져서 할머니 집 유리 문짝을 와장창 깨뜨리는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어지간한 사람 같았으면 경찰을 부르고 고소를 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한평 할머니와 어르신은 자기들이 죄인이라 죄값을 치렀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뒷집 아저씨가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되려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열불이 나서 한평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남의 집 문짝을 못 쓰게 만들었으면 새로 해 주든지 해야지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5만 원 주더만. 유리 새로 하라고."
"유리 값이 5만 원이라고 누가 그래요? 그걸로는 턱없이 모자랄 텐데. 경찰에 신고나 해 버리지 왜 가만히 있어요."
"맨정신이었간디? 술 먹고 했는디 어째...."

한평 할머니도 속이 상한 것 같기는 했지만 술김에 한 실수니까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크게 한숨만 내쉬셨다. 그 일 말고도 속 터지는 사건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때마다 마찬가지였다. 싫어도 어쩌겠냐며 쉽게 용서하고 받아들이셨다.

하여, 지금은 한평 할머니와 어르신, 그리고 뒷집 아저씨가 거의 한 식구처럼 살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를 같이 먹으니 말이다. 심지어 뒷집 아저씨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재료를 들이밀며 한평 할머니에게 요리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나 같으면 네가 먹고 싶으면 네가 직접 해 먹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를 법한데, 한평 할머니는 시키는 대로 음식을 해서 밥상에 올린다. 신랑이 뭘 해 달라 해도 귀찮은 마당에 홀아비 사정까지 봐 주면서 사시다니! 어쩜 그럴 수 있는지 놀랍기도 하고 너무 한심해서 내 속이 뒤집힐 때도 있다.

한편, 나는 어떤고 하니 진작에 뒷집 아저씨를 '사람도 아니다' 낙인을 찍고 상종을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술에 취해 찾아와서는 차를 달라는 둥 자기 아들이 보고 싶다는 둥 술주정을 하니, 처음 몇 번은 받아 주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나가세요. 저희 집엔 차 없으니까 가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맨 정신에 와서 하세요!"

내가 생각해도 야멸찬 말투로 아저씨를 쫓아냈다. 그 뒤로 길에서 마주치면 아저씨도 나도 안면몰수 하고 지나치는 사이가 되었다. 바로 뒷집이라 마주침이 없을 수가 없지만 최대한 마주침을 피했다. 그런 이유로 친정 엄마에게 걱정을 듣기도 했지만 어쩌랴.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니고야마는 성격인 것을....

그런데 말이다, 얼마 전에 뒷집 아저씨의 늦둥이 아들 정호가 방학을 맞아 아빠 집에 왔는데, 그 녀석이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거다. 다울이보다 두 살 많은 아이라 함께 놀 또래가 그리워서 그런 줄은 알지만 날이 밝았다 하면 우리 집으로 달려오니 몹시 못마땅했다. 놀러오는 애를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마음을 열고 맞이는 하면서도 내 마음은 힘들었다. 특히 자기 아빠를 꼭 빼닮은 듯한 넉살과 뻔뻔함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미운 소리를 하게 됐다.

예를 들어 정호가 "아줌마, 배 고픈데 먹을 것 좀 줘요. 빨리 내 놔요."라고 말할 때 나는 "배 고프면 너네 아빠한테 달라 해.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라며 도끼눈을 떴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함부로 내뱉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했다. 내가 이러고도 어른인가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사랑을 품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또 얄미워서 도끼눈을 뜨다가....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 우리 집 다울이 다랑이, 수봉 할머니 집 기명이 수진이, 뒷집 아저씨 아들내미 정호까지,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함께 만들면 더 재밌다.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더불어 산다는 건 함께 하는 기쁨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디는 것.ⓒ정청라

그러던 어느 날, 한번은 아이들이 집에서 하도 시끄럽게 놀기에 나가서 놀라고 했더니 다랑이까지 형들 뒤를 따라나선 일이 있다.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찾으러 나갔더니 한평 할머니 집 댓돌 위에 아이들 신발이 있었다. 그래서 문을 쓱 열고 들어서려는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다랑이가 뒷집 아저씨 품에 안겨 군고구마를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 곁에서 정호가 다랑이 손을 따스히 잡아주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정말이지 누가 봐도 다정한 풍경이었다. 다랑이는 사랑스런 눈길과 손길 속에 한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걸 보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뉘우침이 찾아들었다. '상종 말자!'라는 팻말을 달고 굳게 닫아 놓았던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왜 정호에게 저렇게 다정하지 못했나 싶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한평 할머니가 한심한 게 아니라 내가 한심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수많은 이유를 들어 뒷집 아저씨를 이웃의 목록에서 제끼려는 행동을 해 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가 아니었을까? 내 영역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다는 냉정한 이기심이 이웃을 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나는 뭐 얼마나 잘났다고 이웃의 삶에 낙인을 찍나.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미우나 고우나 함께 하려는 마음을 지키는 것일 텐데 말이다.

새해에는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배우려 한다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정청라
귀농 10년차, 결혼 8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