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한상봉] 이브 콩가르를 다시 읽는다 1

교황과 추기경, 주교, 재속사제, 수도자, 평신도로 이어지는 가톨릭교회의 위계질서는 교황권과 황제권의 지루한 권력투쟁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고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천 년 가까이 지속된 성직주의의 폐습을 송두리째 거두어 내기에는 지난 50년이 너무 짧은 걸까. 지난 반 세기 동안 교황과 주교, 사제들의 권력은 ‘봉사직’이라는 개념이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교회 위계질서의 바닥에 위치한 평신도조차 자신들의 호칭을 여전히 ‘평(平)신도’로 놔 주고 있을 만큼 문제의식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황, 하느님의 종들의 종

성직을 권력에 갈음하던 시대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던 요한 23세 교황은 즉위식 강론에서 “교황이 국가수반이자 외교관, 학자이자 조직가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은 그저 “착한 목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은 ‘종교적 신민을 통치하는’ 최고위 관료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이런 점에서 공의회가 선포한 성직자의 ‘봉사 직분’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던 프랑스 도미니코회 이브 콩가르 추기경의 업적은 대단하다.

▲ 이브 콩가르, "봉사하는 교회 가난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가톨릭출판사, 1974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 즉위 직후부터 줄곧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원한다’고 선언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황청 기구 가운데 일부를 승격시켜 ‘정의평화성(省)’과 ‘평신도가정성’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교회 밖으로는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과 교회 안으로는 평신도의 위상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참에 다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 한 권 있다. 공의회가 한국교회에서 사실상 실종되었던 지난 30년처럼, 1974년에 가톨릭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니 벌써 40년이나 지난 책이고, 절판된 지도 오래 된 이브 콩가르의 “봉사하는 교회, 가난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라는 책이다.

이브 콩가르가 1973년에 이 책을 출간했으니, 한국교회에서 곧바로 직수입해서 번역한 셈이다. 그만큼 당시 한국교회는 공의회 정신을 얼마나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1974년은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해이면서, 이른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젊은 신부들이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던 때다. 이 책에서 이브 콩가르는 ‘머리말’에서 “모든 권력이나 권위의 행사는 봉사하는 데 있으며, 교황은 자기 자신을 즐겨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 부른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채록된 말 가운데 바오로 6세 교황의 대관식 강론은 교황을 비롯한 성직의 요점을 잘 요약하고 있다.

“진정 내가 이 전투의 교회(지상의 교회)에서 교계적 단계의 최고 권력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하느님의 종의 가장 낮은 지위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이런 이유로 권위와 책임, 영예와 겸손, 권리와 의무, 권력과 사랑은 기묘하게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선출된 나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들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합니다’(루카 22,26 참조)”(1963년 6월 30일)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종이고 심부름꾼

만약에 사도들과 성직자들이 존경과 권위를 누린다면, 이것은 그들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그분의 이름 때문이라는 게 이브 콩가르의 생각이다. 만일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받아들여진다면, 그 어린아이도 똑같은 영예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권위 역시 가장 낮은 데로 임하는 길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며, 이 모든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서로 예수님의 상좌(上座)를 차지하려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꾸짖는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으뜸자리는 ‘심부름꾼’의 자리이며, 사람들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노예’의 길이다. 이를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는 ‘봉사’(Diakonia) 직분이라고 부른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 마태 20,25-28)

당시 어느 종교나 문화에서 노예나 종을 뜻하는 ‘도울로스’(doulos)라는 말을 종교적으로 사용한 예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만 그리스도인들과 사제들을 스스로 ‘종’이라 불렀다. 이들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종이며, 예수님처럼 다른 모든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을 서약하고 봉사함으로써 주님과 온전히 결합된다고 믿었다. 사실 예수의 제자들과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생도일 뿐 아니라, 그 스승을 모방하고, 스승의 생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이 받은 사명을 당신의 사명으로 여기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인이 되고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노예로서 봉사를 했다.

이브 콩가르
이를 두고, 이브 콩가르는 “제자들의 생활은 남김 없이 그리스도의 것이었다”면서, 하느님께서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필리 2,7)던 것처럼, 낮은 데로 내려가는 길을 걸으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만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봉사 직분을 수행하는 자는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복종하는 사람”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봉사 직분을 아주 분명한 어투로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2코린 4,5)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코린 9,19)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서는 아예 ‘지도자들의 의무’를 공지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의 원로들에게 이르기를 신자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모범이 되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모범’이란 어떤 모범일까? 남을 섬기는 ‘종이 된 자의 모범’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삶이다. 자기 직분을 통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삶이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1베드 5,2-4)

봉사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교회

한국교회의 현실을 돌아보자면, 교구장 주교의 막대한 권한도 문제려니와, 그 교구장 주교 아래 줄을 서고 있는 측근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문제는 더 심각한다. 야망이 있는 사제들은 저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교구장의 마름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고,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교구에서 연신 성지 개발 등 사업을 벌이고, 심지어 교구 재정 확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익 사업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요즘은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교회에도 먹히는 세상이다. 그만큼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목자’보다 ‘사업가’가 제격인 사제들의 난립을 통제하지 못하는 교구는 ‘부도 수표’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이참에 주목해야 할 고위성직자가 두 명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두봉 주교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언제나 “보잘 것 없는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 이야기 좀 해 달라”고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주교였다. 충분히 듣고 결정은 분명하게 하셨던 분이다. 누가 뭐라하면 “주교를 가르치려 든다”며 역정부터 내는 주교는 자격미달이다. 말년에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예전에 두봉 주교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나이 때문이 아니겠나” 되물었다.

▲ 두봉 주교.ⓒ지금여기 자료사진
안동교구 초대교구장이었던 두봉 주교는 교구장 정년을 15년이나 앞두고 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못 미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종이 종신제의 관습을 깬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직무수행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겠다. 두봉 주교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70-80년대에 김수환 추기경이 40대였고, 윤공희 주교와 나길모 주교도 40대였다. 지금은 주교들 나이가 평균 65세는 되는 것 같다. 거의 70이 다 되어가니 젊은 사람들 생각과 좀 다를 수밖에 없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생각도 별로 깨이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아주 현실적인 혜안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본인이 직접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기보다 측근들의 이야기에 더 솔깃해진다. 이것은 다른 사제들과의 소통을 막고, 결국 일부 측근 사제들의 의견만 반영된 독단적 결정이 이뤄진다. 지배만 남고 봉사는 종적을 감춘다.

두봉 주교는 1969년 안동교구장이 되면서, 주교품을 받을 때 누구나 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도 내세우지 않았다. 두봉 주교는 “서양에서 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지 서민인 내가 무슨 문장을 가져”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라는 생각을 품고 사목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1990년에 교구장직을 일찍 사임하고 나서, 안동교구 사제들이 뜻을 모아 교구의 사명표어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아름다운 전통이다. 교구장이 바뀔 때마다 교구의 사목지침이 요동을 치는 게 아니라, 평사제들의 뜻을 모아서 사목지표를 정하는 기풍은 아직 안동교구밖에 없다.

주교가 없는 듯이, 사제가 없는 듯이, 시나브로 사목이 이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제가 평신도보다 열 배로 봉사하고, 주교는 백 배로 봉사하는 기풍. 오직 사심 없는 봉사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교구가 필요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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