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같은 사람들 있습니다. 충북과 경북이 맞닿은 마을 가톨릭농민회 청천ㆍ노나 분회 사람들입니다. 이곳에 들락거린 지도 어느덧 십년이란 시간이 지났건만 늘 그렇게 땅과 함께 나무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올해도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과 이 마을에서 2박3일 함께 했습니다. 석현 형님네 야콘 밭에 가서 하루 종일 야콘을 캐고, 들에서 석현 형님 어머님이 오토바이로 날라다 주신 맛난 밥도 먹고 그 밭의 비닐까지 정리했습니다. 지난여름 비가 많이 와 야콘 밭에 물이 들이차 예년 보다 씨알도 작고 걷이도 시원찮아 버려둘까 했던 밭을 함께 정리하고 나니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며 석현 형님은 바보같이 웃습니다. 형님의 순박한 웃음에 힘든 밭일에 지쳤던 농부학생들도 바보같이 웃습니다.

올해 선업이 형님이 청주교구 가농회장을 맡아 힘든 형님 마음 돌보랴, 집안일 돌보랴 바쁜 정임 형수는 올해 인근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학교일까지 겹쳐 바쁜 정임 형수와 천 평도 넘는 배추밭에 나가 한나절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았습니다. 올해 유난히 비가 오지 않고, 약도 치지 않은 정임 형수네 배추 모양이 기가 막힙니다. 벌레가 먹고 또 먹어 그물망같이 되어버린 배추 밭에서 묵묵히 풀을 뽑고 벌레를 잡던 형수가 “농부학교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혼자 울 뻔 했다.”며 말꼬리를 흐립니다.

석형 형님과 정임형수 사는 마을 옆에는 ‘왕 소나무’ 한 그루 서있습니다. 나무 나이가 육백년이 넘은 큰 나무입니다. 1945년, 2차 대전 끝 무렵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땅에 떨어질 때 속도는 시속 320km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8만 여 명이 죽고 땅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시속 320km가 생명을 앗아간 그 자리에 시간이 흐르자 나무가 자라났습니다. 나무의 속도는 시속 0km입니다. 나무는 태양과 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나 그 자리에서 다른 생명체를 착취하지 않고 가장 크게, 가장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석현형님과 형수, 선업형님, 정임형수, 순재형수, 기열형님, 나무꾼 홍철형님, 선녀 종임형수, 하늘지기 꿈터 남궁수녀님, 장 수녀님 ... 모두가 나무 같습니다. 속도로, 욕심으로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네 삭막한 도시살이를 지탱해주는 큰 나무들입니다. 그 나무들이 함께 있어 우리가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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