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 생활" 쓸 수 있게 천주교 용어집 개정

남자수도회 장상협의회장 황석모 신부가 “축성 생활은 비상구를 찾는 삶이 아니라 영성을 필요로 하는 삶”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2월 2일 ‘봉헌 생활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축성 생활의 날’ 담화문에서 “수도자들의 삶의 형태가 전문성 위주로 직무가 다양해지면서 공동체 생활이 영성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 실현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오늘날 많은 축성생활자의 사고가 시대의 비유로서의 가치보다 기능적 전문성을 더 중시한다”고 지적하고, 세상을 닮아감으로써 잃어버린 ‘비유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2014년 12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봉헌 생활의 해' 개막 미사에서수도자들이 수도회 창립 정신이 담긴 회헌을 바치고 있다. ⓒ강한 기자

한편, 이 담화문은 수도회와 재속회 회원들의 삶을 가리키는 말로 ‘봉헌 생활’뿐만 아니라 ‘축성 생활’을 쓰고 일반적으로 부르는 "수도자" 대신에 "축성생활자"라고 쓴  점이 눈에 띈다.

‘축성 생활’이라는 용어에 대해 주교회의 용어위원회 총무 안소근 수녀는 “‘봉헌 생활’은 자신이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가 되고 ‘축성 생활’은 하느님이 축성하신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 주도권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고 1월 26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안 수녀는 “하느님이 주도권을 갖고 축성하신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 때는 ‘축성 생활’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수도 생활 교령’에서도 수도 생활은 ‘세례의 축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춘심 수녀(성삼의 딸들 수녀회)도 이 용어들을 깊이 파고들어 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3년 여름호 글에서 “축성은 하느님의 일이요 봉헌은 인간의 응답”이라며 “엄밀한 의미에서 ‘축성봉헌 생활’로 번역됨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2000년에 나온 옛 “천주교 용어집”에서는 수도회와 재속회원의 삶을 일컫는 라틴어 vita consecrata를 번역한 말로 ‘봉헌 생활’을 선택했다. 당시 용어집에서는 “‘축성’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성별’(聖別)의 개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데에다 실제 용례에서도 ‘축복’ 등의 용어와 혼동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틴어 ‘consecrare’는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여서 ‘축성’으로만 보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수도 생활’도 공동 생활을 전제로 하는 좁은 범주의 개념이라며 수도자들의 생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봉헌 생활’을 채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간 수도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이의가 적지 않았다. 이에 2014년 12월 25일에 새로 나온 “천주교 용어집” 개정판에서는 “하느님께 봉헌된 삶이라는 의미에서 봉헌 생활이라고도 하고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하신다는 의미에서 축성 생활이라고도 한다”며 “문맥에 따라서 축성 생활로 옮길 수도 있다”고 정했다.

가톨릭 전례력에서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은 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 의식을 치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날을 수도자와 젊은이들의 수도 성소를 위해 기도하는 ‘봉헌 생활의 날’로 정했다.

이번 담화문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 1월 26일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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