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저 강물의 밑바닥에도 손이 달려 있다고 믿어야.
이 산 저 산기슭에서 몰려와 작업라인이나
판매라인 앞에 붙어선 아이들처럼
일렬로 늘어선 손들이 안간힘으로
강바닥 후비며 앞으로 한 손 나아갈 때
꽉 째인 톱니바퀴처럼 무거운 저 강물도
비로소 울컥, 한 바퀴 굴러가는 거라 믿어야.

-송경동, 모래톱 


고운 모래사장이 결 따라 펼쳐진 강변에 나가 본 지 참 오래된 듯하다.
어려서 동네 방천뚝 너머 냇가에 가면, 그때만 해도 고운 모래톱을 매번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그려놓은 것인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발자국도 손자국도 찍을 수 없었다. 그 냇가에 놀던 투명한 실치들이 만들어 놓았는지, 송사리들이 만들어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어디나 모래가 생길만한 곳들은 모두 포크레인이 들어서 파내버리거나, 상류에 댐이 쌓여 물살이 각각의 모래알을 수백만 번씩 굴리고 굴려 만들어 놓던 그 아름다운 모래톱을 구경해 볼 수가 없다.

모래톱을 이루던 작디 작은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도회지로 팔려나와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의 피땀으로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참 아름다워졌다. 이 정도의 문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보라. 세상의 밑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동이 없는 한 세상은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그런 눈으로 언젠가 섬진강 가에서 모래톱을 보고 있을 때 들었던 슬픈 마음을 적어 보았다. 세상의 변화가 힘든 만큼 세상의 변화를 이루게 한 그 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을 기억하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송경동 / 시인.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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