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마지막]

46년간의 지상 순례를 마치고 포르티운쿨라에서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아시시로 돌아온다. 유해는 우선 성 다미아노에 들러 클라라와 자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성 조르조(Giorgio) 성당에 안치되는데 이곳은 성인이 어렸을 때 교육을 받았던 곳이며 첫 번째 설교를 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성 클라라 대성전이 있는 자리가 본래 성 조르조 성당 자리였는데 이 성당 앞 광장에서 1228년 7월 16일 프란치스코의 시성식이 있었다. 같은 해 7월 17일, 그러니까 시성식 다음날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은 아시시 서쪽 언덕, ‘지옥의 언덕’(Collis inferus)이라 불리던 곳에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주춧돌을 놓고 그곳을 ‘천국의 언덕’(Collis paradisi)이라 부른다. 성 밖의 참수터였던 탓에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던 곳이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를 모실 대성전 자리가 되면서 ‘천국의 언덕’이 된 것이다.

▲ 리보토르토에서 바라본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아시시.ⓒ김선명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대성전이 아직 축성되기 전인 1230년 5월 25일,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주제대 밑에 안치되었으나 15세기 이후 무덤 자리가 잊히게 되어 19세기 초 다시 발굴되기까지 비밀에 싸여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작은 형제’라고 여겼던 프란치스코가 아예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된 작은 사람, 프란치스코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함경도에서는 동생을 ‘저근이’라고 한다는데 말하자면 ‘(나보다) 작은 이’라는 뜻이겠다. 이 말을 들은 뒤로 프란치스칸들의 ‘작은 형제’라는 말을 들을 때면 ‘저근이’가 생각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어느 프란치스코 공동체에서는 “형제, 참 쪼맨하네”라는 말이 칭찬처럼 쓰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자뿐 아니라 우리끼리도 서로 작고 낮은 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낮아지려고 애쓴다면 바로 거기가 천국이 아니랴. 그것이 바로 가난의 정신이고 프란치스코가 귀하게 여겼던 보물이었던 것을....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은 상부와 하부로 나뉘는데 아래쪽 대성전에 들어가면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 거기 머물며 기도할 수 있다.

▲ 프란치스코의 무덤과 그 앞에서 기도하는 수도자들(왼쪽), 대성전의 저녁기도.ⓒ김선명

성인의 무덤에 머물다가 눈에 익은 수도복을 보았다. 아시시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을 입은 분이어서 혹시나 하고 신학교 다닐 때 알게 된 한국 수녀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수녀님이 아시시에 계시단다. 공부하러 로마에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침 방학이라 아시시 모원에 머무시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만나는 수녀님은 이 주일이 넘는 순례 끝에 후줄그레해진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셨다. 수녀원은 아시시 시내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리 알았으면 여기 묵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다. 때가 되어 순례자 숙소에서 저녁 대접을 받았다. 별 모양의 파스타로 끓인 미네스트라, 우유와 과일, 빵 등, 늘 길에서 햄 몇 조각과 잼 바른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순례자들에게는 풍성한 성찬이다. 십자가가 새겨 있는 빵은 여기가 아시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한번은 클라라 성녀가 교황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교황께서 성녀에게 축복 기도를 부탁하셨던 모양이다. 성녀는 교황께서 하셔야 한다고 거절했지만 결국 순명해서 축복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식탁 위의 빵에 십자가가 새겨졌다는 것이다. 순명의 열매인 기적이라고 할까.

▲ 십자가가 새겨진 빵(왼쪽), 순례자 숙소에서 만난 베로니카와 엘레오노라.ⓒ김선명

옆 자리에 있던 베네벤토에서 온 아이들, 베로니카와 엘레오노라와 친해졌다. 귀여운 꼬마들을 보니 서울에 사는 조카 녀석들이 그리워진다. 이 녀석들 또래인 우리 조카들은 내가 찾아가면 현관까지 달려 나와 큰 아빠를 반겨 준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도 나를 반가워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좋은 것은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지만 프란치스코 성인도 이 말씀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내가 짓는 미소 한 자락, 내가 해 주는 말 한 마디에 힘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힘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아시시에서 순례자들을 환대하시는 수녀님들처럼, 이 귀여운 아이들처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고 그것은 가난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 가난은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사랑임을 되새겨 본다. 그것이 가난의 성인 프란치스코가 보여 준 삶이고 그 삶의 결과가 아시시의 서쪽 언덕에 장대하게 선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아니겠는가. 성 프란치스코의 영광 아니겠는가.

▲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너머의 노을.ⓒ김선명


지금까지 ‘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을 24회에 걸쳐 연재해 주신 황인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