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레시다 문헌 - 67]

5. 교회 내의 선교적 제자들의 친교

5.1 친교 속에서 살아가도록 부르심 받다

 
154.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습니다.(마르 3,14 참조) 예수님께서는 친교를 증진하고 사명을 식별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32)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경우에는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풀이해 주셨습니다.(마르 4,11; 33-34 참조) 예수님은 일흔두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해 주셨습니다.(루카 10,17-20 참조) 예수님께서 따로 그들과 머무셨던 것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제자들이 공동체의 삶과 선교활동을 기름지게 하는 데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은 꼭 필요합니다.

155.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아드님과 더불어 “성령의 친교”(2코린 13,13) 속에서 아버지와 친교를 나누도록 (1요한 1,3) 부르심 받았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교회 신비의 원천이자 모범이며, 목표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긴밀히 결합하고 온 인류가 하나됨을 위한 성사와 같으신 혹은 표지이자 도구로서의” 그리스도 안에 부르심 받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의해 하나 된 백성들”입니다.(바오로 6세, ‘인류의 빛’(Lumen Gentium), 1항) 신자들의 친교와 하느님 백성 안의 특정 교회들 간의 친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친교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156. 선교적 제자직의 소명은 교회 안의 친교에 대한 공동의 소명입니다. 친교가 없으면 제자직도 없습니다.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그리스도인과 새로운 개인주의적 영성 추구 경향과 같은 현대 문화에 흔히 나타나는 유혹을 고려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교회의 친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며, 그 신앙이 “우리에게 하나의 가족, 가톨릭교회 안에서 보편된 하느님의 가족을 우리에게 줍니다. 신앙은 우리를 친교로 이끌므로, 우리를 고립된 “나”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개막연설’ 3항)라고 우리는 선언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지속적인 제자직, 그리고 사도들의 계승자들과 베드로의 계승자와 맺는 친교 경험의 일부가 되는 구체적 친교에 소속되는 것이 그리스도인 사건의 본질적 차원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157. 믿음과 세례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활동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보편 사제직을 통해”(‘개막연설’ 5항) 라틴아메리카에서 세례 받은 우리 모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친교를 살고 또 전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복음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친교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이기”(‘푸에블라 문헌’ 218항) 때문입니다.
 

번역 : 배우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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