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인권]


군국주의 시대 일본을 깊이 해부했던 일본 학자 노다 마사아키는 그의 명저 <전쟁과 인간>에서 이렇게 일본의 ‘정신’을 분석한다.

"사회 전체가 근대화를 서두르고 부국강병을 향해 공격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했으며, 그런 탓에 기본적으로 심기가 좋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분은 변화하기 쉽고 권위적이며, 공격할 대상을 찾아 늘 자극적이기 쉬웠다. 지위, 기능, 신분, 성 등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고, 누구 앞에서 겸손하고 누구에게 위압적이 될 것인지, 누구에게 관대할 것인지 생각하며 늘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끊임없는 정신적 긴장을 미덕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두 사건이 군국주의 일본의 이러한 정신분열증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하나는 제2롯데월드 건설과 항공안전 문제로 궁지에 몰린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관련된 사건인데, 그는 국회 국방위에서 이 건물이 항공안전이나 안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 하다가 미 하원 대표단을 만날 일정으로 그 불편한 자리를 뜰 수 있었는데, 미 하원 대표단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국회에서 의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왔는데 좀 불편했다. 미국 하원 의원들을 보니까 내 마음이 아주 편해지고 여러분이 나를 국회에서 구해줬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한 한미동맹이다.”

노다 마사아키가 관찰한 정신분열증 환자 일본처럼, 누구 앞에서 위압적으로 될 것인지 그리고 누구 앞에서 아양을 떨 것인지 잘, 분열적으로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의원조차 ‘차라리 미국 국방부 장관을 하라’고 질책했을 정도다.

두번째 사건은 며칠 전 열린 작년 촛불시위 관련 광우병 대책위 관계자들의 재판인데, 재판정에서 빚은 공방과 사법 지도부의 재판 압력행사가 중첩되어 있다. 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서울대 법대(형사법) 한인섭 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이렇게 명민하게 표현했다. “형법은 시민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형법의 위치가 방패에서 무기로 옮겨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법치를 앞세우면서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인 의사표현의 자유,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법학자의 소신을 표현한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 권력이 대부분 법치를 내세우며 인간에 대한 공격을 자행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은 촛불사건 재판에 대한 신영철 대법관의 초법적 압력행사가 비로소 세간이 들어날 때 진행되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몇몇 판사들의 노력으로 겨우 사법부 바깥에 알려진, 있을 수 없는 거대한 사법 비리인데도, 한 보수적인 일간지는 노다 마사아키의 진단과 비슷하게 ‘늘 공격할 대상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일간지는 양심적인 판사들의 문제제기를 “조직적인 사법부 공격”으로 표현하고 신영철의 책임을 묻는 대신 이번 사건을 "성향 짙은 일부 판사들의 사법부 파괴공작"이라 규정했다. 이 신문은 다른 판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젊은 좌파 판사들이 법원이 지난 정권 때와 달라지는 데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누구에게 충성을 보일 것인지 누구를 위압적으로 공격할 지 아주 잘 구분하고 있었다.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하나의 목적에 집착하는 권력은 무시무시하게 작동한다. 그 앞에서는 재벌에게 줄 선물 하나로 안보에 관해 말바꾸기한 것도 상관없고, 법을 시민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아도 상관없고,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부여한 사법부의 권력을 남용해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해도 아무 상관없다. 강자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기 때문에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 정신적 긴장을 미덕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좌파’와 ‘친북’이라는 상상된 적에 대한 상상된 전쟁이 그 미덕을 항상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 세대들의 전쟁 멘탈리티이자 전쟁 트라우마라고 측은하게만 받아들이기에는 그 증상이 너무나 광적이고 공격적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대등한 타자로 보지 못하고 전장에서 만난 적으로 보는 이들의 정신분열증은 지나간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너무나 닮았다. 치유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대훈/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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