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창, 1991

세밑에 루쉰의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루쉰은 "광인일기"나 "아Q정전" 같은 소설로 더 잘 읽히지만, 솔직히 그의 소설은 그다지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다. “촌철로 사람을 죽이고, 한칼로 피를 본다.”는 그의 문장이나, 사상가로서의 면모, 인간적 매력 등은 소설보다는 산문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그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죽음'(1936)이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도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지금 나에게도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다. 서양물을 먹은 이들이 나에게 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나는 이렇게 답하기로 결심했다. “계속 증오하라. 나도 하나도 용서하지 않겠다.”

어설프게 타협하지 마라

▲ 루쉰(1881-1936).(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는 어설픈 타협과 관용을 싫어했다. 실제 그는 유언으로 가족들에게 “타인을 상하게 하고 복수에 반대하고, 관대를 주장하는 자와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람 좋은 린위탕(林語堂)이 “페어플레이”(fair-play)를 이야기하며, 중국에는 이 정신이 부족하다며 나무라듯 말했을 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물에 빠진 개도 패야 한다. 오히려 더욱 패야한다.”고 맞받아쳤다.

요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 불고 있는 멘토 열풍을 대할 때마다 나는 루쉰의 글 '청년과 지도자'(1925)를 떠올렸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겨 보면 이렇다.

전진하려는 청년들은 대체로 지도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단언건대, 그들은 영원히 지도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찾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행운이다. 자기 스스로를 아는 자라면 지도자의 자리를 사양할 것이다. 지도자이길 자임하고 나서는 자가 과연 나아갈 길을 진정으로 알고 있을까? 길을 알고 나서는 자들은 대개 30세가 넘고, 정신은 회색이고 육체는 노쇠의 기미가 보이는 자들로, 자신이 길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길을 알고 있다면 자신은 벌써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였을 것이고, 지도자입네 하며 무사태평하게 있을 리가 없다. 불법을 설교하는 스님이건 신선의 약을 파는 도사건, 언젠가는 우리와 똑같이 백골로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게 극락으로 가는 길을 묻고, 하늘나라에 갈 비결을 구한다.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청년들이 금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이것이 바로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 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루쉰은 말한다. ‘어른들이 옳았다면, 세상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간단하고 분명한 이치다. 자신들이 망쳐 놓은 세상에서 젊은이들을 불러다 모아놓고, 자신의 경험을 무슨 심오한 가르침이나 되는 듯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가 염치를 아는 어른이 된 것은, 그리고 쉽게 타협과 관용, 희망을 남발하지 않게 된 것은 깊은 절망과 오랫동안 대면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그는 전도유망한 의대생이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우연히 러시아 스파이로 찍혀 목이 잘리게 된 중국인들과 그것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이 찍힌 환등기 필름을 본 후, 신체 돌보는 일보다 정신을 개혁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깨닫는다. 그는 자퇴 후 귀국하여 문예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동지들의 배신을 경험하며 좌절한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사람과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은 꽤나 냉정하다.

아래층에서는 한 사내가 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 그 옆집에서는 오디오를 틀고 있다. 건너편 집에서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윗층에서는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웃고 있다. 마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강 위에 떠 있는 배에서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딸이 통곡하고 있다. 인류의 슬픔과 기쁨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내게는 단지 그들이 법석을 떨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소잡감', 1927)

실의한 그가 글을 쓴 것은 '희망이 반드시 없다'고 할 수 없기에

실의한 그는 수년 동안 시골에 처박혀 탁본이나 치고, 옛 비문이나 베끼면서 세상을 등진다. 그렇게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는 그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 글을 써 보라 권한다. 그때 그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철로 된 방'(1922)이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에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이 불행한 소수들에게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돌아온 친구의 답은 이랬다.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친구의 그 말을 듣고 회심한다.

맞다. 나는 내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쓰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갑자기 염세주의자에게 낙관론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그 둘을 조심스레 저울질하며, 조금씩 희망 쪽으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정신을, 자신의 전 생을 옮겨 가고자 노력했다. 루쉰은 자신이 좋아했던 헝가리의 시인 ‘페퇴피 샹돌’의 시구를 빌려 이렇게 자주 말하곤 했다. “절망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희망이 그러하듯”

어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세밑에 루쉰을 읽은 것은, 이런 어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연말과 연초에는 모두들 어느 정도는 희망이라는 걸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는 달력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아마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좋아질 기미는 없고, 나빠질 일들만 즐비하다. 세상은 이미 치유하기 어려울 만치 망가져 있다. 특히 한국사회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루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린 지금 강철로 된 방에 갇혀 있다. 지나친 비관이나 과장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작년 한 해 가장 큰 사건은 단연 ‘세월호참사’일 것이다. 304명이 죽었고, 그중 250명이 열일곱 열여덟 소년 소녀였다. 이 중에는 아직 그 몸이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이들도 있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슬픔이고 고통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 사회의 부패가 배를 가라앉혔고, 무능한 정부는 놀랍게도 자신의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국민들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비열한 방법으로 자신의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 사회의 엘리트로 행세하며 그들만의 성채를 굳건히 한 법복 귀족들에 의해 ‘종북’이라 일컫는 당원 수 10만이 넘는 정당이 ‘합법적’으로 해산되었다. 더불어 뭇사람들이 마음은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갑고 잔인해져만 가고 있다.

지난 회 나는 한병철의 책들에 대한 서평을 쓰며,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린 제목이었다. 지금 나는 루쉰이 느꼈던 그 절망을 느낀다. 지금 이곳은 강철로 된 방이다. 그러나 다시금 루쉰이 깨달았듯, 그건 오만일지도 모른다. 혁명, 그것은 미래의 일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므로 그것을 내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내 몫의 일이 아니다. 올해 나는 마흔이 되었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으니, 청춘이라 말하기엔 조금 쑥스러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제는 분명 어른으로 행동해야 할 나이다. 마흔, 새로 시작하는 한 해, 루쉰 선생의 글 한 구절에 기대 조심스레 어른의 삶을 시작해 보려 한다.

내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이 허망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 갈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내 몸 밖에 있다 할지라도 나는 지나간 나의 슬프고 아득한 내 청춘을 찾아내리라. 몸 밖의 청춘이 소멸되면 내 몸 안의 황혼도 이내 스러질 것이기에. ('희망', 1925) 


고윤수
(토마스)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