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유재석은 2014년 연말 지상파 연예대상의 2관왕이 됐다. <KBS>와 <MBC>의 대상을 차지했다. 지상파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대두되고 예능의 ‘새로운 재미’는 거의 종편과 케이블 프로그램으로 넘어간 마당에 어쩌면 지상파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유재석이 그야말로 시청률의 보증 수표이던 시절엔 대상에 인색하게 굴더니 말이다.

역설적으로 유재석은 2014년 첫 연예대상을 거머쥔 KBS 수상소감에서, 폐지된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에 대한 언급을 두 차례나 했다. 그 방송에 딸려있던 수많은 동료들의 일과 생계수단을 지켜 주지 못한 미안함이 뚝뚝 묻어났다. 말과 행동에 유독 신중한 연예인인 그가 두 번이나 언급한 것은, 그간의 마음 고생을 대변한다. 그는 ‘대상’보다 프로그램의 유지와 장수에 훨씬 큰 의미를 두는 ‘현역’이었다.

역시 ‘국민MC’ 유재석의 가치 또한 대상 2관왕보다 그가 ‘좌장’ 격인 장수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났다. 2014년 연말부터 2015년 연초까지 3주에 걸친 일명 “무한도전-토토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잠시 아주 많은 시청자들에게 ‘뭔가에 홀린 듯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잠시 푹 잠겨 있다 가까스로 2014년 연말 그리고 2015년으로 돌아온 게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30퍼센트 가까이 본방을 사수했고 순간시청률 35.9퍼센트를 기록했다. 요즘 시청 패턴에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

▲ 토토가의 한 장면.(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방송 이후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은 선곡표가 저절로 ‘토토가 특집’처럼 돼 버렸고, 인기곡 순위는 물론 갑자기 ‘문화’ 전반을 휩쓸었다. 딱 그 무대 그 방송이 뭔가를 강렬하게 일깨웠다는 것이다. 가슴 벅차도록 즐거웠고 이 시간여행의 기회가 감사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적어도 ‘토토가’가 있던 주말에는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과거에 좋았던 것인지, 이 방송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게 된 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뜻밖의 감동에 젖었다.

게다가 많은 시청자가 공감한 것은, 아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미덕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된 ‘판’, 혹은 멍석을 깔 수 있는 시청자와의 오랜 신뢰가 낳은 결과로 보인다. 섭외 과정부터 본무대까지의 3주를 다 봐야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감동이기도 했다. 제작진 특히 김태호 PD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공을 출연 가수들과 그날의 방청객, 시청자에게 돌렸다. 이전에도 몇 번 비슷한 기획을 논의했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고 한다. "우리의 우상이던 1990년대 스타들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가 짊어진 삶의 짐들이 있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이번에 출연하신 가수 분들이 가장 베스트였다.”

김태호 PD는 "저희도 미처 몰랐던 2015년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관통하는 감정의 뇌관을 건드린 데 있다고 보는데, 결과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이 '토토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찬란했던 그때를 기억하는 방청객과 시청자가 주인공"이라는 나름의 인기 요인도 정리했다.

▲ 무한도전 멤버 유재석과 박명수가 토토가 섭외를 위해 서태지의 집을 방문한 장면.(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정말 그날의 방청객들은 뭔가 달랐다.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들어 줄 준비’로 충만했다. 그 충만함은 현장에서 끝나지 않고 순식간에 시청자를 사로잡은 ‘현상’으로 불붙었다. 서로 ‘그 마음이 내 마음’이었던 것일까.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울컥하는 왕년의 스타들과, 벅차도록 즐거운데 어딘가 뭉클한 시청자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 노래들이 어디를 가도 사방에 메아리치던 시절에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토토가’는 그야말로 타임머신 그 자체였다.

‘토토가’에 출연한 스타들 특히 댄스 가수들의 건재는 눈시울 뜨거울 정도의 감격을 안겨 주었다. 우리가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듯, 그들은 무대 위에서 ‘전성기’를 재현했다. 분명한 것은 단순한 복고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상실감이나 아쉬움 혹은 ‘향수’만은 아닌 듯하다. 왜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좋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시절에 그 음악들을 좋아했건 아니건 어쩌면 싫어했을지라도, 그 노래들은 한 시절의 공기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감동은 복고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다.

우리 역사에 어쩌면 처음이었던 ‘풍요로운 세대’였던 한 세대, 냉정하게 말하면 역사적 수혜들의 ‘무임승차 세대’이기도 했던 그 세대가 중년에 접어 들고 있다. 90년대에 꿈꾸었던 세상은, 분명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보다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사는 게 너무도 당연할 줄 알았던 그때를, 그런 감각이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지금 돌아본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심지어 아직 늙지 않았다. ‘토토가’의 느낌이 소중한 것은, 살아 있는 이들의 존재 증명은 움직이고 행동하는 데서 온다는 점을 새삼 일깨웠기 때문이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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