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25]

어설프게나마 농사를 짓고 살아가게 된 지도 어언 9년째 접어든다. 농사 규모가 많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건 다 가꾸어 먹다 보니 씨앗 종류만도 수십 가지! 전 해 심었던 걸 안 심게 되기도 하고, 원래 있던 씨앗을 다른 종류로 바꾸어 심기도 하지만 어쨌든 해마다 조금씩 씨앗 종류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면서 느끼는 건 씨앗이 한 종류 늘 때마다 삶이 조금씩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씨앗 하나가 새로운 삶을 물어다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한 예로 두 해전부터인가 박을 심게 됐는데 처음 박 씨를 심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기껏해야 하얗고 하늘하늘한 박꽃 구경이나 실컷 해 보자 정도? 그러던 것이 조롱조롱 열매를 매단 것을 보니 저걸 어찌 써 먹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만들었다.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 생명에게 어떻게든 쓸모를 찾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열매 하나 따 먹어 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어디선가 야광 연둣빛 애벌레들이 나타났다. 처음엔 한두 마리 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 날 보니 무성하던 박 잎이 죄다 사그라들어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다 애벌레들 소행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면 박 잎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이 일 정도로 무참히 갉아먹어 매달려 있던 박 열매까지 대부분 썩어 들어갔다. 아니, 그렇게 좋아 보이던 것들이 이렇게 처참한 광경으로 탈바꿈하다니! 할 수 없이 그해에는 씨앗만 건진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리고는 올해 원래 있던 박 씨에다 토종종자 모임에서 얻은 박 씨까지 두 가지를 심었는데 얻어 온 박 씨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박 열매도 두껍고 크게 달릴 뿐만 아니라 거름 한 주먹 없이 심었는데도 넝쿨을 무섭게 뻗어 내어 열매를 끝도 없이 매다는 것이다. 그것도 길가 쪽 담벼락을 타고 뻗어나가니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오메, 박이 징그랍게도 많이 달렸다야. 박속 무쳐 먹으믄 맛나겄네."
"박 넝쿨이 겁나 좋게 뻗었네. 썰어서 말렸다가 해 먹어 봐. 호박나물 맹키로...."
"이 박 좀 보소. 바가지 맨들어 쓰믄 좋겄구먼."

박 씨 좀 얻어가겠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박 열매를 볼 때마다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수봉 할머니는 물론이고 성가셔서 마늘이고 보리고 안 심겠다는 한평 할머니나 돈 되는 농사에만 관심이 있는 동티 할머니까지도 말이다.

▲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각종 바가지. 생긴 대로 쓸모를 찾는다. 오그라든 건 아이들 장난감통, 호리병 비슷한 건 잔돈 모으는 통, 번듯하니 잘 생긴 건 곡식 담는 그릇....ⓒ정청라

동화 속 풍경처럼 박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은 아무래도 할머니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떤 것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박속 안 무쳐 먹어도 먹을 것이 쎄고 쎈 데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넘쳐나는 세상인데도 다시금 박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겠나. 대체 박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할머니들의 박에 대한 애정이 나로 하여금 박을 알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했다. 그리하여 지난해처럼 아끼다 똥 되는 일이 없도록 먹음직스러운 박이 있으면 요리용으로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박으로 김치도 담근다기에 깍두기도 담가 보고, 물김치도 담가 보았다. 약간 꼬들거리는 식감이 낯설지만 신선했고 꽤 먹을 만했다. 호박 나물 볶아 먹듯이 볶아 먹기도 했는데 들깨가루를 넣고 고소한 맛을 냈더니 상당히 괜찮은 맛이 났다. 말렸다가 해 먹는 묵나물도 씹히는 느낌이 재미있어 김밥 속재료로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할머니들이 누누이 입에 올리는 박속 무침의 맛은?

수봉 할머니 레시피에 맞추어 된장과 참기름, 식초를 넣고 무쳐 맛을 보았다. 그런데 이럴수가! 양념을 넣고 넣고 또 넣어도 맹숭맹숭하기만 하니 이를 어쩐단 말이냐. 기대가 컸던 건지 몰라도 내 입맛을 사로잡는 맛이 아니었다. 이 맛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수봉 할머니가 귀찮아도 박 농사는 지어야겠다며 열을 올리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수봉 할머니를 만나서 직접 물어봤다.

"알려주신 대로 박속을 무쳤는데 제가 한 건 맛이 없어요. 왜 그런 거예요?"
"맛나제 왜 안 맛나? 나는 집이가 준 박으로 맛나게 해 묵었는디?"
"뭐 다른 특별한 비법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
"비법은 뭣이.... 아! 박속은 여럿이 같이 묵어야 맛나. 나도 도란떡 집이 갖고 가서 여럿이 먹응께 더 맛나대. 그라고, 배가 고파야 더 맛나. 옛날엔 굶기를 밥 먹대끼 한께 더 맛났는가벼."
"그럼 지금보다 옛날에 더 맛있었어요?"
"그라제. 옛날엔 참말로 맛나게 먹었제."

여럿이 먹어야 더 맛있다거나 배가 고파야 맛있다는 건 상식이지만 할머니 입에서 그게 정답으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진심으로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해서 다음엔 여럿이 함께있을 때 먹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속 무침은 그렇다치고 이번에는 바가지를 연구할 차례! 전부터 골동품 가게에 가면 바가지가 그렇게 탐이 나서 몇 번을 쳐다보고 만져봤던지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박이 단단하게 여물기를 기다렸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다 여문 뒤에 따서 원하는 바가지 모양으로 썬 다음, 푹 삶으라고 했다.

그런데! 다 여문 박은 무게도 많이 나가지만 단단하기도 억수로 단단해서 쉽게 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나는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찍부터 뒤로 물러나고 신랑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칼은 들어가지도 않는지라 톱으로 힘겹게 썰고 큼직한 가마솥에서 몇 시간이나 푹푹 삶아야 하니 곁에서 지켜보기에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삶은 뒤엔 건져서 속을 깨끗이 파내야지, 겉면을 숟가락으로 득득 긁어내야지.... 한마디로 고생길이 훤한 작업이었다.

▲ 다랑이가 쌀항아리 뚜껑을 깨뜨렸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준 바가지 덮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이기는 하나 볼수록 정감 있다.ⓒ정청라
그뿐이 아니다. 제 아무리 정성을 들여 이 과정을 마쳤다 해도 말리는 과정에서 바가지가 오그라들면 그간의 고생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조금이라도 덜 여문 박이었면 고생만 하고 바가지는 써 보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랑이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오그라진 바가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은 까닭에 우리 집에는 장인 정신이 깃든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바가지가 대거 만들어졌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살림살이가 마련된 것 같아 얼마나 기쁘던지! 처음엔 아까워서 쓸 생각도 못하다가 곡식을 퍼 담거나 모아 놓을 때 쓰기 시작했다.(아이들은 자기들 장난감통으로 가져다 쓰기도 하고 얼굴이나 머리에 쓰고 놀기도 한다.) 뭐 깔끔하고 반지르르하지는 않지만 플라스틱 나부랭이와는 비할 바 없는 질감으로 손에 착 감기니 쓸 때마다 정이 간다. 그냥 아무데나 던져 놓아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되니 눈이 즐거운 건 덤!

그런 데다가 우리 집에서 바가지를 발견한 할머니들은 저마다 바가지를 타고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옛날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으신다.

"이게 옛날 멧바가지여. 지사 칠라믄 바가지에다가 쌀을 담아서 웃목에 놔 둬. 지사 하루 전날. 그래가꼬 인자 하룻밤 묵혔다가 그 쌀로 지삿밥을 하제."
"바갈치에 넣고 쌀을 씻으믄 그라고 잘 문대져, 참말로 쌀 씻기로는 제일이여."
"나는 노상(늘상) 바갈치가 내 밥그릇이었어. 여기다 국도 떠 먹고 밥도 비벼 먹고.... 바갈치에다 먹으믄 밥이 훨 맛나대."
"이우제(이웃에) 음석 갖다 줄 때도 바갈치에 담아다 나르고 그랬제. 하목 양반 살았을 때 그 집이서 허드렛날이라고 조밥을 한 솥 했어. 그걸 바갈치에 담아서 김이 솔솔 나는 걸 갖다 준디 그라고 맛있게 먹었당께. 입덧이 말도 못하게 심했는디 그 밥 먹은께 눈이 떠지더랑께."
"바갈치는 몇 년 쓰믄 쪼깨지기도 하고 그러거든? 그라믄 인자 물에 담가 불렸다가 바늘로 꼬매 쓰고 그랬어.“

할머니들 기억 속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그러고 보니 흥부 놀부 이야기에서도 박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박 씨는 우리와 함께였고 우리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던 것 같다. 씨앗 하나가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이어져 온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인지...! 그리고 그와 같은 보물 씨앗이 지금은 '대박이네 쪽박이네' 하는 약간은 경박한 듯한 어조의 말씨로만 남아 있는 현실은 얼마나 가슴 아픈 상실인지...!

손바닥 위에 박 씨를 올려놓고 가만히 본다. 아직 살아남아 나에게 와 준 고마운 씨앗, 열매살로 내 주린 배를 채워 주고 바가지로 든든한 살림살이까지 되어 준 사랑스러운 씨앗. 오래도록 함께 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 그와 더불어 가까이에 박타령을 함께 부르고픈 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선물로 내어 주고 싶다. 하늘에서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처럼.
 

정청라
귀농 9년차, 결혼 7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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