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24]

따스한 햇볕이 겨울 추위를 누그러뜨리는 한낮이면 쌍지 할머니 집에 놀러 간다. 할머니 집에 가면 귀여운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일곱 마리 강아지들! 그 여린 생명들이 꼬무락거리며 움직이고 마당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좀 망설여졌다. 여기도 강아지똥, 저기도 강아지똥.... 가뜩이나 지저분한 마당에 똥까지 그득하니 마음 편히 발을 디딜 수가 있어야지 말이다. 내 경우엔 주의 깊게 살펴보고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지만 아이들은 그게 안 되지 않는가. 분명 똥은 안 보고 강아지만 보고 내달릴 텐데 그러다가 신발은 물론이요 옷에까지 똥칠을 하는 건 아닌가 염려가 되어서 억지로 아이들 손을 잡아 끌기도 했다.

"강아지들 낮잠 잘 시간이야. 다음에 놀러 오자."
"싫어. 지금 놀고 싶어."
"그만 가자니까. 바로 앞에 똥 있으니까 조심하고...."
"많이 놀고 가고 싶어. 나 강아지 좋아한단 말이야."

말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다울이는 물론이요, 말을 제대로 못하는 다랑이까지도 격렬한 몸부림으로 저항하니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 내가 졌다. 니들 마음대로 놀아 봐라."

그리하여 점심 먹고 나서 잠깐씩 쌍지 할머니 집에 놀러가는 것이 단골 코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쯤이면 쌍지 할머니네 강아지들도 점심밥을 먹고 활달하게 노는 시간이라 아이들과 강아지들은 함께 노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누가 강아지인지 누가 사람 새끼인지 모를 정도로 뒤섞여 쫓고 쫓기고 안기고 안아 주며 눈빛을 빛내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아득한 동심이여!

▲ 새끼들을 빼앗길까 두려워 수심 가득한 어미 개 모습.ⓒ정청라

헌데 그 곁에서 지켜보는 어미 개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새끼들이 남긴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강아지들에게서 눈을 못 떼니 말이다. 날마다 들이닥치는 꼬맹이들에게 자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새끼들을 빼앗기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행여 똥을 밟거나 똥 위로 쓰러지는 건 아닌지 강아지를 껴안다가 진드기라도 옮아오는 건 아닌지 주시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 그러고 보니 어린 것들이 동심으로 묶인 한 패라면 어미 개와 나는 모정의 탈을 쓴 긴장감으로 묶인 한 패라는 말씀?

이런 상황에서 쌍지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의 등장에 강아지들은 할머니 품으로 쪼르르 달려들고 어미 개한테 하듯이 애정 표현을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오메, 이삔그...." 소리를 연발하며 입을 맞추고 얼굴을 부비며 강아지를 어루만진다. 마치 어미 개가 자기 새끼를 대하듯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정도 몸짓이 뭐 그리 놀랍냐고? 개 키우는 사람은 으레 그러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나도 개 키우는 사람들이 개를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예뻐하는 모습을 자주 봐 왔으니까. 하지만 그 경우에는 개가 사람 행세를 하며 애정을 나누는 것으로 비춰지는데 반해 쌍지 할머니는 사람이 개가 된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분이 과연 사람인지 개인지 모를 정도로 개에 가까운 모습이라서....

할머니 모습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강아지처럼 놀던 아이들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머니 곁으로 다가섰다.

"너도 갱아지랑 뽀뽀해 볼래?"

할머니가 개 한 마리를 안아서 다울이 앞에 들이미니 다울이는 주저주저 하더니만 고개를 돌려 버린다. 하지만 다랑이는 넙죽 뽀뽀를 하고 코까지 비비는 게 아닌가. 한술 더 떠서 귀를 잡아당기고 볼을 꼬집다가 박치기까지! 눈을 찡그리고 선 엄마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워따. 어린 것이 갱아지를 한나도 안 무수와 하네. 이삐지? 너맨키로 이삐지?"

▲ 할머니처럼 해봐요 요롷게. 다울이는 지금 쌍지 할머니로부터 강아지 예뻐하는 법을 전수받는 중이다.ⓒ정청라

쌍지 할머니는 마냥 흐뭇하신지 다랑이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면서 강아지 태어나던 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다.

"뱃속에 일곱 마리나 담고 있음시로 얼매나 무거웠겄어. 배가 불룩혀서 곧 있으믄 나오겄다 했는디 딱 그날 저녁에 배가 똘똘 뭉침시롱 아프드란 말이여. 꼭 애기 나올라고 할 때 같어. 저도 아픈지 낑낑거리고 나도 아파서 배를 붙잡고 있다가는 방에 들어와 블었어. 내가 없어야 될 것 같아서.... 그라고는 다음날 아침에 나가봉께 수북이 나왔더란 말이여. 혼자서 얼매나 고생이 많았겄어."

어머나 세상에! 그럼 할머니도 어미개와 함께 진통을 겪으셨다는 말씀? 마을 할머니들께 쌍지떡은 만날 개방에서 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여기서 나온 말이었나 보다. 언제 새끼를 놓을까 불안한 마음에 줄곧 함께 하셨을 테니. 그나저나 부인이 진통을 겪을 때 부인과 똑같이 진통을 겪는 남편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개가 진통을 겪을 때 그 진통을 함께 느끼는 사람 얘긴 처음 들었다. 동물과 어느 정도의 교감을 이루어야 그런 경지에 다다르는 걸까? 쌍지 할머니는 전생에 개였던가 아님 개의 여신이 사람으로 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할머니 얘기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추와서 벌벌 떨길래 이불을 갖다 노니께 어미가 지 쪽으로 싹 끌어가블어. 그래가꼬 인자 한평떡이 안 쓰는 옥장판이 있다길래 가져다가 뜯어서 속에 솜을 빼다가 깔아 주고 덮어 중께 마치 좋더랑께. 그래 노니께 한마리도 안 내삘고 이만치로 컸어."

할머니 말씀 속에서 겨울 추위에 강아지 한 마리라도 잃을까 염려되어 마음을 쓰셨던 게 느껴진다. 하나뿐인 친딸을 허망하게 잃어본 경험이 있으셔서인지 생명을 바라보는 눈길이 남다르신 것 같다. 사람이나 개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어 하는 눈물겨운 자비심이랄까?

내가 할머니 이야기 속에 푹 잠겨 있는 그때, 다울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나 좀 봐. 나도 강아지랑 뽀뽀할 수 있어."

그러더니만 자연스럽게 뽀뽀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울이로 말할 것 같으면 개한테 물려본 경험이 세 번이나 있어서 개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한다. 좋다고 쫓아가지만 강아지가 다가오면 흠칫 놀라며 피하고 강아지를 안을 때도 어딘가 뻣뻣한 모습...(나도 그렇다. 내 모습도 다울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랬던 다울이가 어느 순간 강아지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쌍지 할머니가 강아지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다울이도 마음의 경계를 허물게 된 듯하다. 나 역시도 다울이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며 '다울이도 하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달라져 있었다. 뽀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편안하게 강아지에게 손길이 가고 거리낌 없이 안아 주게 된 것이다. 똥을 밟든 똥이 묻든 전혀 개의치 않고.... 정말 그 순간만큼은 강아지들이 다 내 새끼 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곰별이를 떠나보내며 다시는 개를 못 키울 것 같다 싶었는데 어쩌면 다시 키울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말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꾸 가까이 다가가고 그렇게 손길로 만나면 거기에서부터 관계는 시작되지 않을까? 쌍지 할머니도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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