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사목위, '가난'이란 주제로 사순 특강 시작

 

"행복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지난 3월 4일 오후 7시에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강당에서 열린 '2009 빈민사목 사순특강' 주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는 '청빈선언실천운동'의 일환으로 올해 사업목표를 '교육'에 두고 이번 사순특강부터 '오늘날 가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강연에 앞서 이강서 신부(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는 위원회의 전신인 도시빈위원회가 22년전 상계동 강제철거의 상황에서 만들어졌으며, 1997년 구제금융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빈민사목위원회가 설립되었다고 전했다. 이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빈민사목이 기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는 제안에 따라서 '청빈운동선언'을 하게 되었는데, "청빈한 삶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빈민사목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번 특강은 "빈민사목이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는 이들만의 폐쇄적인 운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난 그 자체를 충분히 성찰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에 따르면, "우리는 가난이란 단어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하며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 왔지만, 오히려 가난의 양태만 증대되었다"고 하면서 "걸림돌로 치부하던 가난의 의미를 다시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자본주의 경제와 소비, 그리고 가난'이란 주제로 첫 강의를 맡은 강수돌 교수(고려대)는 강당에 들어와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보통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보다 마음이 풍요로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마저 가난해야 한다는 말에 더욱 큰 깨우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강연에서 강수돌 교수는 방송매체 등 모든 이들이 '경제' 이야기를 하고, 돈 많이 벌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하는 부분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앞으로 상품은 산더미 쌓여가고 팔리지는 않고, 한편에선 에너지가 바닥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1960년대 초반에 비해 지금 경제가 250배 정도 발전했는데, 여러분은 25배 정도라도 더 행복해지셨나요?"라고 청중에게 물어보면서 "어느 지도자가 나와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제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영화보고 쉬면서 행복하게 살자고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우리 국민들에게 성장논리가 내면화되었고, 아이들도 자재분류하듯이 학교에서 돈벌이 되는 자원과 안 되는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곧 학교가 인적 자원의 물류창고가 되었다는 말이다.

강 교수는 정부가 덜 생산하고 소박하게 사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면서 유기농을 살리고, 마을을 살려서 스스로 식의주 교육 문화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낮고 가난하고 힘 없는 것들이 나약해 보이지만, 스스로 피해자라고 한탄하면서 비참하게 여기지 않고 생명력을 품고 있으면 그가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경제논리에 숨어 있는 '파이의 크기를 늘린다"는 것도 "그 파이를 나누어먹어 봤자, 그게 농약 버무려서 만든 파이라면 건강한 살림살이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경제과정에서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부는 권력이다"라는 지하철 광고를 인용하며 인생살이에 깃든 두 가지 길 가운데, 권력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곧 "더불어 살며 기쁨을 누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현실을 완전히 뒤집는 이러한 방식은 "절망적"이지만, "길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라는 루쉰의 말을 인용하며 "희망도 그러하다"고 말했다.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사순 특강은 격주로 박기호 신부(3/18일, 가난으로 보는 생명평화의 환경), 고병헌 교수(4/1일, 교육복지의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실천적 인문학), 류정순 소장(4/15일, 경기 침체기의 신앙인의 소비와 가족생활) 의 순으로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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