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23]

서울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느라 열흘이 넘게 집을 비웠더니만 일상의 리듬이 뚝 끊어졌다. 양념을 어디에 뒀는지 반찬거리는 뭐가 있는지 마른 장작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정리할 옷가지가 방 하나로 가득 차서 널브러져 있고. 식탁 위에는 그릇이 수북하니 나와 있고. 집 안팎 구석구석이 죄다 내 손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랑은 얼른 메주부터 쒀야 하지 않느냐며 채근을 한다.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니 날이 좀 푹 할 때 얼른 해치우자는 것. 얼떨결에 그러자고 대답을 했더니 당장 메주 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 없는 사이 미리 추려 놓은 콩을 깨끗이 씻고, 조리질을 해서 돌을 고르고. 물에 담가 불리고....

신랑이 이렇게 서두르니 별 수 있나. 나는 정신이 반쯤 돌아온 상태에서 가까스로 지난 해 메주 쑤던 날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먼저, 가마솥에 콩 한 말이 다 안 들어가서 하루에 두 번에 걸쳐서 콩을 삶느라 허둥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올해는 가마솥에 들어갈 만큼씩 이틀에 걸쳐서 메주 쑤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그래요 그럼. 닷 되씩 이틀 작업하는 걸로 합시다.”

그렇게 해서 오늘 아침 해 뜨자마자부터 신랑은 가마솥을 씻어 퉁퉁 불은 콩을 안치고 불 때기에 돌입했다. 이제 메주 냄새 날 때까지 콩을 푹 삶기만 하면 되리라. 그런데 대체 얼마나 푹?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도 그걸 몰라서 난감했었지?

▲ 메주 옆에서 다랑이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메주를 빚는 내내 저런 표정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정청라

메주를 쑬 땐 머리 빗지 마라

나는 얼른 한평 할머니 집에 가서 우리가 메주를 쑤고 있음을 알려야 했다. 그래야 감 나와라 배 나와라 옆에서 참견해 주실 테니까.

“할머니. 저희 오늘 메주 쒀요.”
“메주 쑬라고? 그라믄 머리 빗지 말어. 머리 빗으믄 메주서 멀카락 난께.”
“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고 한평 어르신이 풀이를 해주신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어라우. 메주 쑤는 날 머리를 빗으믄 메주서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메주에서 머리카락이? 그 얘길 들으니 갑자기 긴 머리를 풀어헤친 메주 귀신의 모습이 떠올라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메주가 무엇이길래 거기에서 머리카락이 자랄 수도 있단 말이냐. 하지만 괜찮다. 오늘 난 머리를 빗지 않았으니. 평소에 머리 안 빗는 습관을 들여 온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난 내세울 것 없는 습관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게으른 습관에 감사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무튼 이렇게 고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 가마솥에 물이 넘쳐서 신랑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된장 넣으면 끓어 넘치지 않는다면서요. 된장 안 넣었어요?”
“넣긴 넣었는데 너무 조금 넣었나?”

그렇게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사이 한평 할머니가 오셨다.

“물이 모지란디? 한 바갈치 더 넣어. 물 없으믄 탄내 나서 못 묵어.”
“아까 한눈파는 사이에 물이 넘쳐서 그래요. 그냥 이대로 삶죠 뭐.”
“물 잔 더 넣으랑께. 그냥 두믄 탄내가 풀풀 난단 말여. 그라고 인자 불 그만 때도 되겄네. 그만 때고 점심 묵고 나서 이따 또 때.”
“왜요? 한 번에 푹 삶는 거 아니에요?”
“아니여. 한 번에 삶으믄 콩이 피래. 뒀다가 또 때야 콩이 삘개져.”


삶은 콩이 파랗고 빨갛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정말 삶은 콩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거다. 아, 신기해라.

그걸 우리 신랑이 개조한 수동식 가는 기계(고장난 고추갈이 기계에 모터를 떼어 내고 대신에 손잡이를 달았다. 항해사가 배를 운전하듯 빙빙 돌리면 작동한다)에 넣고 갈아서 예쁘게 메주를 빚었다. 지난해에 메주를 너무 작게 만들어서 매달기가 어려웠던 관계로 이번엔 메주틀에 넣고 큼직하게 모양을 잡았다. 그랬더니 옆에서 또 참견하시는 한평 할머니의 한 말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다 똑같이 맨들지 말구 가지가지로 맨들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해야 써.”
“아 네....”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하기로 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묻는다고 해도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냥 수긍하기로 한 것이다. 경험에 뿌리박은 지혜는 이렇듯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이므로.

때마침 집풀 이부자리에 누워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메주덩이들도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처럼 이렇게 몸을 맡기세요. 내가 어떻게 해야지 하고 덤벼들지 말고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말고 다 알아서 해 주십사 놓아 버리세요.”

그 말이 맞다. 메주를 만들 때는 메주가 되어야 한다. 공손하게 모든 걸 맡긴 채로 먼저 경험한 이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하면서.... 더군다나 이제 메주는 더 큰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더 이상야릇하고 오묘한 단계로 돌입해야 하니 더욱, 눈 질끈 감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하리라. 적당한 온기와 습기.... 그 안에서 곰팡이 친구들이 꼬여 들어 삶은 콩 덩어리를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켜 줄 그곳으로! 그런데 잠깐, 적당한 온기라면 도대체 몇 도쯤 되는 거지? 이번엔 조금 더 말이 잘 통하는 수봉 할머니께 여쭤봤더니 역시나 이상야릇한 대답을 하신다.

“너무 뜨거와도 안 되고 덜 뜨거와도 안 돼아. 너무 뜨거우믄 메주가 안 뜨고 거죽만 깨까시 말라블더랑께. 메주가 추우믄 거믄 곰팡이가 나블고. 그란께 불 조절을 잘 해야 써.”

아, 도대체 어떻게 잘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해 메주에 푸른곰팡이가 나서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에잇, 그냥 느낌대로 가는 수밖에. '하늘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되뇌이면서....

그런데 말이다. 갑작스레 계획에 차질이 하나 생겼다. 수봉 할머니 말씀이 내일은 메주를 쑤면 안 된다나 뭐래나? 원래 음력 초사흗날과 초이렛날에 메주를 쑤면 메주에서 벌거지(벌레)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도 모자라 벌레가 나온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진작 알았으면 힘들더라도 오늘 하루에 일을 다 해치우거나 다른 날로 날을 잡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랴. 남은 콩 닷 되는 이미 물에 불려진 상태이고. 모레는 또 집에 손님들이 오는 날이라 그 전에는 일을 마쳐야 하는 것을 말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고 보니 내 안에서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왜? 도대체 왜 그런 건데? 옛날부터 그래왔다고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하면서 주먹을 들이대고 있다.

“왜?”에서 “네!”로 가기, 참 어렵구나.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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