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1월에 미국 여자 수도회를 순시한다고 공표했을 때, 많은 여자 수도자들이 놀랐다. 반응은 다양했다. 반기는 이들도 있었고 걱정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샌드라 M. 슈나이더스 수녀는 동료 수녀들 그리고 친구들과 이메일로 자기 생각을 나누곤 했다. 물론 공개할 목적은 없었으나, 그녀의 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우리 편집자 측에서 그녀의 허락을 받아 편지를 공개하게 되었다. -NCR편집자

      다음 글은 기사도 아니고 출판할 의도는 더더욱 없었다. 몇몇 동료들과 이메일로 소식을 나누며 자연스레 대답한 내용이다. 이렇게 기사로 싣게 되어 몇 군데 수정을 했는데, 괄호로 묶은 말은 관련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좀더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필자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Sr. Sandra M. Schneiders
보내준 이메일 고맙다.
나는 교황청의 이번 순시에 대해 겁을 집어먹고 싶지는 않아. 순시는 순시일 뿐이지. 얼마전 치른 신학교 순시도 마찬가지로 공격적이고 불성실했어. 이번 순시가 우호적이고 명쾌하며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은 전혀 믿지 않아. 적대적인 처사일 뿐 결론은 이미 나 있으니까. 의도는 무언의 압력이지.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떳떳하게 생각한다면, 편한 마음으로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넓혀가는 일 말이지.

물론 우리가 교황청의 순시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맞이할 수는 있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만, 응접실에서 맞이할 뿐 집안을 단속하게 내버려두진 않을 테니까. 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했을 때는 그에 걸맞는 대답을 하는 게 당연할 테고. 난 단지, 우리 미국 수도자들이 종종 실수하듯이, 툭 '터놓고' '대화'에 힘씀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리라는 꿈을 거두기 바랄 뿐이야. 이건 동등한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지. 순시자들은 이해하러 오는 게 아니야. 내 말을 믿어. 신학교 순시에서 알게 된 사실이니까. 솔직해야겠지만 신중해야 해. 공격을 했다가는 우리가 다칠 수도 있어. 폭력 앞에서도 폭력을 써서는 안 돼. 그렇지만 뱀처럼 지혜로워야지. 비폭력 저항이야말로 많은 경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지난 8년간 수도 생활의 쇄신에 노력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의 여자수도회지도자회의가 대표하는) 우리와 같은 수도회들은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는 거야. 우리는 더 이상 '(교계의) 사도직 활동(the apostolate)에 전념하는 수도회'가 아니야. 고전적인 선교사들이 그러하듯 수녀들이 밖으로 '나가서' 가톨릭 학교와 병원 등지에서 정해진 일, 곧 교계의 높은 분들이 지정하는 계획된 일들을 처리하는 닫힌 수도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는 봉사하는 수도자들이야. 봉사는 우리의 신원과 소명의 본질이지. 봉사는 우리의 세례에서 비롯되고, 서원으로 명시되며, 수도회의 지도력으로 구별되고, 수도회의 영성으로 효과를 내는 것이지 교계 높은 분들의 파견에 따르는 게 아니야.

우리는 나라 안에만 머무르는 수도자들도, 해외로 나가는 성직자들의 끄나풀도 아니야. 우리의 모든 삶은 봉사하는 신원으로 결정돼. (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된 곳) 복음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나서고 (교회 제도 안에 속해 있을 수도 있으나, 흔히 그렇지 못하지), 봉사직에 걸맞는 방식으로 생활하며, 예수님께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24시간 함께 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대로 자유로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 우리의 공동체 생활과 봉사는 물론 단체 활동이기는 하지만, 모든 이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한다는 의미의 '공동 생활'은 아니야.

우리에게 공의회 이후의 '쇄신'은 간단했어. 우리는 복음과 창립 정신에 되돌아감으로써, 표면적인 생활 방식의 수정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깊이 있는)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지만,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놓으려는 조직적인 노력에 맞서, 차분하고도 확고하게 쇄신을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해.

탁발승이 베네딕토회 수사들과 다른 것처럼 우리는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가 대표하는) '사도적 수도회들'과는 달라(교황청에서는 물론 그들을 더 인정해 주겠지만). 큰 차이점은 그들 사도적 수도회들이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을 읽고 그 요구대로, 영성을 심화하고(제발 그러길 바라지만), 수도복을 좀 더 간편하게 하고, 일정표에 좀 더 융통성을 두고, 고약하기만 한 관습들을 버리는 등 약간의 수정을 했다는 것인데,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과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인류의 빛(Lumen Gentium)>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읽고, 닫힌 수도회/사도적 양식에서 탈피하여 세상 안으로 들어가라는 부름을 받았어. <기쁨과 희망>에서는 교회가 몇세기를 두고 거부했던 세상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유형의 공동체가 옛 형태를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프란치스코회가 창립되었어도 베네딕토회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우리의 여정을 멈추려 할 때만 문제가 생기지. 이럴 때 우리가 앞서간 증거자들처럼 용기를 가져야만 해. 제도 교회는 언제나 수도 생활, 특히 여자 수도회의 새로운 바람을 거부했어. 그렇지만 새로운 바람은 계속해서 불거야.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가 바로 그 새로운 바람이야. 그러니 우리의 본모습을 잃지 말자. 우리는 은둔하지 않는 수도자들이며 서품받지 않은 봉사자들이야. 교회법에 이렇게 분류된 수도자는 없지만, 우리는 그러한 수도자들인걸. 법이 삶을 따르지, 삶이 법을 따르진 않아.

(2008년 스톤힐 대학에서 열렸으며,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유형의 수도회에 매우 비판적인) 스톤힐 '심포지엄'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시각을 나누고 더욱 큰 진리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아니었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친목회였지. 그들과 같지 않은 사람들은 다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자기들끼리만 속삭였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면 괜찮아. 우리는 그들을 따르지 않으니까. 이건 교황청이 겁쟁이들을 부추겨 일으킨 전쟁같아. 휘말리지 말자.

이번 순시가 빚어낼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장담컨대 이 나라 수도회의 95%를 폐쇄시키진 않을 거야. 그렇게 하고 싶어도 말이야. 19세기 윤리 신학을 가르치지 않거나, 성직자 성추문이 소아 성애 사제들을 비호하는 부패한 주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학교의 동성애자들에 의해 야기된 거라는 공식 노선을 따르지 않는 신학교를 폐쇄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아.

이게 다야. 교황청 순시는 겁나지 않아. 더 좋은 할 일이 많은데.

주님의 평화를 누리며 용기를 내기를!

-산드라 수녀

미시간 먼로에 있는 티없으신 성모성심회 수녀이며, 캘리포니아 버클리 예수회 신학교의 신약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교수

번역/김미경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2.27. 산드라 M. 슈나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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