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단교 안 한 유일 공산 국가

미국이 전격적으로 쿠바와 수교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화해 노력이 있었다.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85퍼센트로 추산된다. 교회의 노력은 두 가지로 진행됐다. 하나는 해외 주교들, 특히 미국 주교들이 쿠바와 유지해온 우호적 관계다. 또 하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에 쿠바 근처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하던 중에 시작된 교황청 차원의 공식 노력이다.

쿠바는 교황청이 외교관계를 단절하지 않은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다. 미국은 쿠바혁명 직후인 1961년에 쿠바와 단교했다. 미국 교계제도는 쿠바 주교들과 늘 관계를 유지했다. 쿠바 주교회의는 1969년에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호소했는데, 미국 주교회의는 1972년에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어 1985년에는 미국 주교들과 쿠바 주교들은 상호 방문했다.

특히 보스턴대교구의 버나드 로 추기경은 적극이었다. 그는 1985년과 1989년에 두 번 쿠바를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카스트로를 만났다. 보스턴대교구는 독자적으로 쿠바 돕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교황청 차원에서는 당시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이던 에체가라이 추기경이 1989년 성탄과 새해 사이에 쿠바를 방문해 9일간 머물면서 카스트로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쿠바와 가톨릭교회 사이에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이전에는 거의 30년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신앙활동은 박해 대상이었다. 에체가라이 추기경은 1993년 12월에도 카스트로를 만났다.

그때 쿠바 주교단은 “사랑은 모든 것을 견뎌 낸다”는 제목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카스트로, 그리고 미국에 있는 쿠바 망명자를 포함한 그의 적대자들에게 평화로운 민족화해를 위한 정치 대화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에체가라이 추기경과 카스트로는 평화와 화해, 그리고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 뒤로 카스트로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쿠바의 장래에 관해 교황청이 믿을 만한 동반자로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쿠바는 교회에 대한 제한조치들을 누그러뜨렸다.

▲ 미국과 쿠바.(이미지 출처 = 구글 지도)

1994년 6월에는 교황청 주교성 장관이던 강탱 추기경이 쿠바에 있는 교황청대사관에서 카스트로와 만났는데, 이 자리에는 아바나대교구의 하이메 알라미노 대주교도 있었다. 그는 그해 10월에 쿠바혁명 이후 처음으로 쿠바 출신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1996년에 카스트로는 바티칸을 방문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났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는 1998년에 쿠바를 방문했다. 그는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자, “쿠바는 세계에 자신을 개방할 필요가 있으며, 세계는 쿠바에 가까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방문 중에 그는 가정과 청소년에 대해 말하는 한편,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둘 다 비판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형인 피델 카스트로를 이어 국가 수반이 된 라울 카스트로는 여러 번 교황의 옆자리를 지켰다.

이번에 미국과 쿠바가 서로 외교관계를 맺기로 결정한 데에는 남미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에 걸쳐 쌓인 가톨릭교회의 지속적인 외교 노력이 밑받침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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