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루카 1, 26-38.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제자들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해 회상하면서, 그들이 믿고 있던 바를 첨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대화를 녹취하여 기록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초기 신앙 공동체의 믿음이 반영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구약성서 구절들을 짜깁기하여, 이 이야기를 만들었고, 역사 안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기교회가 믿었던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듣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거론된 가브리엘 천사는 유대교 묵시 문학 저서 중 하나인 다니엘서(8,18)에 언급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여라.’라고 인사합니다. 그 인사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스바니야가 예루살렘을 향해 한 말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니 기뻐하라(3,14)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 파란 두건을 쓴 마리아.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827)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호칭은 사무엘서(1사무 1,17-18)의 엘리가 장차 사무엘의 어머니가 될 한나에게 한 말입니다. 한나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입니다. 어느 날 엘리가 그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수태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불렀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마리아의 수태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된 일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브리엘 천사가 이 인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신다.’고 답합니다. 이 말은 성령이 내려 오셔서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1,2)에서 가져 왔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세상이 창조되었듯이, 성령이 새로운 생명 하나를 마리아 안에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생명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던 엘리사벳이 수태한 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과 더불어 천사의 말은 끝났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늙은 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가 일 년 후에는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자, 사라가 그것을 엿듣고,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창세 18,14) 그때 천사는 ‘하느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 탄생 예고 이야기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이 세 여인을 상기시키는 말로 꾸며져 있습니다. 한나와 사라는 구약성서가 언급하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고, 엘리사벳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입니다. 이 세 여인들에게 공통된 것은 수태치 못하는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생산력이 없는 여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수태하여,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신앙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출산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리아가 처녀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인류의 생산력이 탄생시킨 인물이 아니라, 인간의 힘이 불가능한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신, 구원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라는 말을 생리학적 의미로 알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성서는 생리학 교과서가 아니고, 신앙의 문서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라는 말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거나, 하느님이 처녀를 더 좋아하신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예수라는 구원의 인물은 구약성서의 이사악, 사무엘, 혹은 세례자 요한과 같이 인류역사가 생산하지 못하는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신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을 사실 보도로 보고, 처녀인 마리아가 기적적으로 잉태하였다고 말하면, 예수는 신화(神話)적 인물이 되고 맙니다. 인류 역사에는 영웅 탄생 신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개국 신화에도 기적적 탄생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단군(檀君)을 비롯해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모두 기적적 탄생 신화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곳에 하느님이 특별히 창조하여 베푸신 구원의 생명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인류는 강하고 풍요로운 것을 지향합니다. 가난하고 허약한 생명은 우리의 눈에 실패작으로 보입니다. 하느님도 우리가 강하고 풍요로울 때,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인류역사는 상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알려 주신 하느님은 달랐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비와 보살핌을 배워 실천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자비와 보살핌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극히 제한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비와 보살핌이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자비와 보살핌을 널리 실천하다가 예수님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생명이 하느님의 것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처녀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생산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내려오신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생명이라고 신앙 고백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살아서 보여 준 자비와 보살핌 안에 하느님의 일을 읽어 낸 초기 신앙인들이 그들이 믿고 있던 바를 구약성서의 언어를 빌려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초자연과 기적을 바라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인류역사 안에 발생하는 자비와 보살핌의 실천들 안에 하느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해마다 기념하면서 하느님이 인류역사 안에 은혜롭게 새로운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달은 하느님의 일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를 모두 행복하게 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비와 보살핌의 실천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하면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서공석 신부 (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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