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시민단체 반발 "소수자 인권은 합의 사항 아니다"

서울시가 그간 추진해오던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사실상 폐기해 시민사회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12월 7일 진보정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4개 진보정당과 13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헌장 선포와 박원순 시장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인권헌장 제정을 촉구하는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 등의 성명과 성소수자단체 등의 농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7일 오후 1시에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차별 금지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며, 인권위법과 국제인권법에서 당연히 인정하는 보편적 인권”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인권사회로서 우리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인권은 합의나 찬반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성소수자 차별을 허용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을 향해 사과할 것과 면담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염형국 변호사는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던 박원순 시장이 인간의 존재 문제를 찬반의 문제로 만들었다”면서, “이는 인권의 가치에 맞지 않는 부정의한 일이며, 혐오를 지지하는 이를 우리의 시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노동당 장석준 부대표는 “성소수자의 투쟁과 비정규직의 투쟁이 다르지 않으며, 자본의 먹튀와 박 시장의 진보적 인권 가치 먹튀도 다르지 않다”면서, “현재와 같은 박원순 시장의 행태는 진보의 먹튀이자, 인권의 먹튀, 민주주의의 먹튀”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에 앞선 지난 11월 30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 역시 인권헌장 제정 보류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 시민 인권 헌장’은 제정시민위원회의 합의로 의결, 채택됐음을 확인하면서, “마무리 단계에서 보인 서울시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일부 집단의 위력으로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서울시는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한 노력과 사후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은 물론, 논란이 있는 한 인권헌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치에 닿지 않는 요구를 했다고 설명하면서, “민주적 원칙에 충실한 절차와 과정으로 확정된 인권헌장을 논란이 있고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용도 폐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시청사에서 3일째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소수자단체와 인권단체도 농성에 앞서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박원순 시장이 12월 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과 가진 간담회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 “성소수자가 이미 시민으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찬반 가능한 문제로 전락시켰으며, 성소수자의 삶이 언제라도 부정당할 수 있는 현실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는 “성소수자 인권의 후퇴가 아닌, 한국 사회 인권의 후퇴”라면서, 인권헌장의 조속한 선포,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벌어진 혐오폭력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을 요구했다.

‘서울 시민 인권헌장’은 애초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에 선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표결에 부친 5개 조항에 대해 ‘전원 합의’를 요구하면서 헌장 선포를 유보했다.

지난 11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해 열린 6차 최종 회의에서 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는 50개 조항의 인권헌장을 최종 채택했다.

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는 지난 8월, 서울시가 “시민이 주인이 되어 시민이 직접 만드는 인권헌장 제정”을 표방하며, 성별과 연령, 지역을 고려한 시민위원과 인권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위원 190명의 제정위원을 위촉하면서 구성됐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이 가운데 26명이 사퇴해 164명이 위원으로 남았고, 11월 28일 6차 최종 회의에는 이 가운데 110명이 참석했다.

위원들은 1차부터 5차 회의에서는 분과별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았으며, 6차 회의에서 ‘무투표합의방식’과 ‘투표방식’을 두고 의결 방식을 논의, 압도적 찬성에 따라 ‘투표방식’을 채택했다.

마지막 채택을 위한 11월 28일 6차 회의에서 50개 조항 가운데 45개 조항은 ‘전원일치’로 통과됐으며, 이견이 제출된 5개 조항에 대해서도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의결됐다. 미합의 조항 5개 중 마지막 표결 대상은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로 나열 하느냐의 여부였다, 이 조항에 대한 투표 결과는 60대 17로 사유 나열을 찬성하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최종 회의에서 제정시민위원회가 미합의 조항에 대한 결정방식을 논의할 당시 서울시는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으며, 투표 결의한 헌장은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제정위원들은 “서울시의 입장과 의견은 시민의 의결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며, 어떤 공공정책도 만장일치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충분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친 만큼, 최후의 수단으로 일부 표결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합의가 만장일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최대한 합의를 한다고 해도, 반인권적 폭력에 굴복하거나 반차별적 가치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장 가운데 차별금지조항 제1장 4조는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과 출산, 가족형태 및 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살효된 전과,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로 명시하고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제정된 인권헌장은 광주인권헌장(2012년 5월 선포)과 충남도민인권선언(2014년 10월 선포)이 있으며,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밝히고 있다.

서울시 인권헌장에 대해서는 일부 보수 개신교에서 공청회를 방해하는 등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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