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농장 취재기 3(마지막)

희망농장(성 라우렌시오 공동체)은 필리핀 나보타스 강가를 따라 길가 천막촌에 살던 빈민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필리핀에서 빈민사목을 하고 있는 김홍락 신부가 설립한 빈민구호단체 PCM(Pampagalak Catholic Mission)과 (사)한국희망재단이 협력해서 빈민들에게 안정된 공간과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희망농장에서 계란과 오리알을 파는 사업을 계획하고 준비 중이나 비용문제로 양계장 공사와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레이나 씨(26)는 ‘언더 더 브리지’(Under the bridge)에서 천막 생활을 3년 간 하다가 희망농장으로 들어왔다. 길거리 천막에서 살던 것에 비하면 희망농장에서의 생활은 훨씬 안정되고 쾌적하다. 또한 천막촌에서는 늘 모자랐던 음식, 물, 전기 등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이 해결됐다. 레이나 씨는 “조용하고, 공기가 신선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희망농장에서의 생활을 설명했다.

구야버나드 씨와 글로리아 씨는 5명의 손주들과 13살짜리 아들을 포함해 6명의 아이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천막촌에 살았을 때, 2평 남짓한 공간에 모든 식구가 잘 수 없어, 할아버지는 자전거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희망농장에서의 생활이 천막촌보다 훨씬 낫지만 이들의 방에 가구라고는 4단짜리 서랍장 하나뿐이다. 찢어지고 해졌지만 옷을 버릴 수는 없다. 생필품은 늘 부족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 없이 무더위 속에서 마당과 양계장을 짓고 있는 공간을 오가며 논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나 학용품도 마땅히 없다.

현재 희망농장에는 총 9가구 42명이 살고 있다. 이들 중 24명이 아이들이다.

▲ 6명의 손주와 13살 난 아들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있는 구야버나드 씨 ⓒ배선영 기자

희망농장은 생활동, 사무동, 양계장 그리고 급수 탱크, 중앙 마당, 야외 주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ㄱ자 형태의 건물로 된 13개의 방과 13칸의 화장실 겸 샤워실, 공동 취사장 및 식당이 생활동이다. 사무동은 사무실과 회의실 겸 공부방, 창고 등으로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닭과 오리 6000여 마리를 기를 수 있는 규모의 건물 세 동과 계란 취합장이 있는 양계장 또한 아직 짓는 중이다.

모든 시설물은 나무와 합판을 사용하지 않고 철골과 강판, 시멘트로 지었다. 흰 개미에게 갉아 먹히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태풍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건축비가 많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13개의 방문에는 순서대로 번호가 적혀 있다. 레이나 씨는 남편 또또(28), 아들 오웬(3)과 함께 8번 방에서 지낸다. 언더 더 브리지에 살 적에 또또 씨는 대형 트럭의 바퀴를 가는 일을 했었다. 하루에 12-13시간 고되게 일하고 들어와 술을 마시고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또 씨의 눈은 늘 충혈 돼 있었다. 레이나 씨는 남편이 술을 끊은 것도 희망농장에서 좋은 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희망농장에는 몇 가지 생활 규칙이 있다. 술은 정해진 날에만 마실 수 있고, 도박은 절대 안 된다.

▲ 공동식당에서 쌀을 씻고 있는 레이나 씨 ⓒ배선영 기자

평생 빈민으로 살아온 주민들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 평생 돈을 모아 본 경험이 없다. 필리핀에서는 은행에 돈을 저금하려면 최소 1만 페소가 있어야 한다. 한 달에 3000페소(약 9만 원)를 겨우 버는 이들에게 1만 페소를 모으기란 쉽지 않다. 저축의 개념을 알 리가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았다.

1번 방에는 짐보이 씨(22)와 아내 에이프릴(21), 두 딸이 살고 있다. 짐보이 씨는 언더 더 브리지의 천막촌에 살 때 사이드카(자전거로 된 교통수단)를 몰아 하루 100-200페소를 벌었다. 그중 50페소는 회사 몫이었다. 쌀 1킬로그램에 40페소, 생선 0.5킬로그램에 25페소, 물 한 박스에 3페소(샤워하는 날에는 2-3박스는 필요하다), 생수 등을 사고 나면 남은 돈의 거의 없었다.

희망농장에서는 더 이상 빈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야 자립 뒤에도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안정된 삶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 주민 전체교육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예산 세우는 법, 돈 관리하는 방법 등 주로 독립 이후의 삶에 대한 교육이다.

또한 천막촌에서와 달리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야 한다. 이곳의 전반적인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김홍락 신부는 부모들에게 아이의 교육에 대해 강조한다. 교육비는 희망농장에서 지원한다.

▲ 장난감이 없어 마당에서 신발던지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 ⓒ배선영 기자

레이나 씨에게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삶(good life)을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선생님....”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가르치는 것을 잘한다고 칭찬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프릴 씨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이들에게 좋은 삶이란 대학에 가서 선생님과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 희망농장이 이들에게 좋은 삶을 줄 수 있을까?

희망은 이뤄질 것이다. 두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도 “일이 아니라 소명”으로 희망농장의 관리자를 맡고 있는 마리아 씨(57)가 있고, 농장의 주민들 걱정뿐인 김홍락 신부가 있기 때문이다. 레이나 씨는 “파더(김 신부)는 늘 우리에게 뭐가 이로울지 생각한다”고 고마워했다.

무엇보다 한없이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희망농장의 주민들이 스스로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 10번 방에 부모님과 언니, 두 여동생과 살고 있는 10살 레이븐이 빨래를 하고 있다. ⓒ배선영 기자
▲ 9번 방의 로잘린 할머니 ⓒ배선영 기자
▲ 점심을 먹는 12번 방의 다디 씨.  ⓒ배선영 기자

한국희망재단 홈페이지: http://www.hope365.org/ 전화) 02-365-4673
후원계좌: 국민은행: 375301-04-078449 / 우리은행: 1005-702-19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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