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2014년

“쿼바디스(Quo vadis)?”

많은 이들이 1970년대 한국에서 개봉했던 미국 영화 제목으로 기억할 라틴어 문장이다. 잘 알려져 있듯, ‘쿼바디스’는 요한 복음서 13장 36절에 나오는 “어디로 가십니까” 하는 베드로 사도의 물음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는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중 마주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렇게 묻는데, 이 부분은 교회에서 정식 성경으로 택하지 않은 외경 사도행전 가운데 하나인 '베드로 행전'에 따른 것이다.

▲ 쿼바디스,김재환 감독, 2014년. (사진 제공 = 단유필름)
이와 반대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쿼바디스’에서 이 질문은 예수가 던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고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이 땅의 교회를 향해 외치는 말이다.

영화 말미에 텅 빈 예배당에 선 예수가 묻는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너희들은 왜 침묵하는가? 모두 다 어디로 숨었는가?”

감독은 영화 처음과 끝에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의 모습을 담았다. 신축을 추진하던 때부터 막대한 건축비와 특혜 논란을 빚은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은 서울 서초구에 지하 7층, 지상 14층 규모로 지어져 2013년 11월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영화에서 이 거대한 예배당은, 화려한 건물을 짓고 많은 신자를 끌어 모으는 데만 열을 올리는 교회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비판하는 개신교의 병폐는 ‘부동산과 돈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다.

영화는 담임 목사직 세습 문제, 여성 신자 성추행 혐의를 받으면서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 하고 묻는 전병욱 목사의 모습,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공공연하게 이명박 후보 지지를 요구한 목사들의 설교 아닌 설교, 고성이 난무하다 못해 가스총까지 등장하는 교단 총회까지, 신자라면 누구나 잊고 싶었을 부끄러운 교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사랑의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씨는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해 이 교회 새 예배당을 ‘침몰 전 타이타닉’에 비유한다. 그는 이 교회의 머릿돌에 ‘한국 교회는 이렇게 침몰했다’고 쓰고 싶다고 말한다.

생전의 설교 영상과 눈 덮힌 쓸쓸한 무덤으로 등장하는 옥한흠 목사(1938-2010)가 특히 목회자들의 도덕 불감증을 강하게 비판하는 대목은, 현재 사랑의교회 모습과 겹쳐져 슬프게 느껴진다.

“교역자가 돈을 사랑하지 않는데 교인들이 돈을 사랑하려고 하겠어요? 교역자가 음란하지 않은데 교인들이 간음죄를 범하겠어요? 교역자가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서 벌벌 떠는데 교인들이 거짓말을 함부로 하겠어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총체적인 위기는 교역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고위 교역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정도다. 그나마 조용기 목사는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 하고 집요하게 묻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뿐이며, 그 밖의 인물은 녹화 화면이나 목소리만 나온다.

▲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 (사진 제공 = 단유필름)

‘볼링 포 콜럼바인’ 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를 패러디한 등장인물 ‘마이클 모어’(이종윤 분)는 영화 말미에 한국을 떠나며 “목사님들이 하도 안 만나줘서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병든 교회 모습에 책임 있는 ‘높은 분들’을 만나려는 감독의 시도가 번번이 좌절됐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사 같았다.

다큐 ‘쿼바디스’는 가상과 현실을 흥미롭게 결합했다. 교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 온 마이클 모어와 대형교회 목사(대역)가 쫓고 쫓기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이와 함께 예수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으로 분장한 배우 남명렬의 행동과 말 덕분에, 무거운 주제의 이 영화는 한결 가볍고 재미있어진다.

영화에서 마이클 모어는 한국을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개신교의 현재 모습은 “복음과 로또를 같이 파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김빠진 다이어트 콜라 같은 느낌”이라며 “콜라는 마시고 싶은데 살은 빼고 싶고, 천국에는 가고 싶은데 사회 정의에는 별로 관심 없고, 거대한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을 모른다”고 말한다.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씨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김재환 감독은 이 영화는 ‘아픈 현실을 비춰  주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천주교 신자 관객이라면 형제자매라고도 할 수 있는 개신교의 아픈 모습에 자기 모습을 비춰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쿼바디스’는 12월 10일에 개봉한다.

▲ ‘쿼바디스’는 가상과 현실을 흥미롭게 결합해 놓았다. 사진은 패러디 등장인물 마이클 모어(이종윤 분, 오른쪽)와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대형교회 목사(안석환 분, 가운데)를 인터뷰하는 장면. (사진 제공 = 단유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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