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17]

천천히 산을 내려와 성 야고보 성당 앞 광장에서 쉰다. 우리가 올라갔던 은수처는 해발 1019미터이고 이곳 마을과 성당은 해발 750미터쯤 되는 곳에 있어 아래쪽 평원과 근처 산들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나무 수사와 지친 다리를 주무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건장한 영감님 한 분이 다가왔다. 우리가 프란치스코 성지를 찾은 순례자라고 하자 반색하며 직접 쓴 시를 한 편 보여 준다. 어느 비 오는 날 차를 몰고 여기 광장에 와서 산 위 프란치스코의 은수처를 바라보다가 영감이 떠올라 지은 시란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아, 그렇지. 이분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여기서 프란치스코를 만나 알던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는구나.

▲ 포조 부스토네의 산.ⓒ김선명


여기 광장에서 검푸르게 빛나는
산 위 바위를 바라본다
그 아래엔 가난한 이들과 외투를 나눠 입었던
가난뱅이 은수자의 작은 경당이 있고
거기 1209년 포조 부스토네에 온 프란치스코가 있다

안녕하세요, 선한 사람들이여
그 아침에 그는 말했다
빵 한 조각과 포도주를 조금 주세요
그는 제 운명을 따라 산으로 가기 위해
맨발로 천천히 마을을 가로질렀다

험한 언덕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걷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바위 위에서 쉬었다.
어깨 위에는 작은 보따리 매달린
지팡이 하나

절벽 아래서
바위 사이 작은 동굴을 보자
그는 모자를 펴고 바위 위에 누워
기뻐하며 외쳤다!
내 집이다
길의 끝에서 집을 찾았다

그는 늑대와 새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나를 내쫓지 말아 다오
자! 노래하고 외치렴
나는 조금 쉴게
새들은 금작화 나무 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며 큰 축제를 벌였다

잠에서 깬 가난뱅이 프란치스코가
친구들에게 외쳤다
나 너희를 벗으로 삼고
여기 머물러야지!
이 동굴을 떠나지 않으리라

‘포조 부스토네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바치는 시’(Poesia a S. Francesco di Poggio Bustone)라는 제목이다. 피에트로는 이 시로 상을 탔다며 상장을 보여 주었다. 종교시 부문 3등이라 적힌 상장에는 “시인은 단순하고 생기 있게 성 프란치스코가 포조 부스토네에 도착한 일을 묘사한다”라고 심사위원 총평이 적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인 대회가 여기저기에서 개최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아시시에서도 시인 대회에 참석하려고 북쪽에서 온 농부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시인 대회는 우리 식으로 하면 백일장 같은 것인데 그런 모임이 학생들뿐 아니라 나이와 계층을 불문하고 열린다는 것이 신선했다. 농부와 트럭 운전수가 같이 참여하는 백일장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있다.

▲ 시인 피에트로(왼쪽), 성 야고보 수도원.ⓒ김선명

성 야고보수도원은 성당과 바로 접하고 있는데 1217년 성 프란치스코가 처음 세웠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성인의 생애가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눈길을 끈다. 그중에는 육욕을 이기기 위해 성인이 가시덤불에서 알몸으로 구르고 있는 그림도 있다. 나귀 형제, 프란치스코는 자기 몸을 이렇게 불렀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형제다. 젊은 시절 단식과 밤샘, 고행으로 나귀 형제를 혹독하게 다루었기에 만년에 프란치스코의 나귀 형제는 몹시 약해졌다.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된 그의 몸, 힘들게 한 세상 그를 태우고 온 나귀 형제를 프란치스코는 안쓰럽게 여겼지만 이미 그 형제는 몹시 지쳐 있었다. 육신은 영혼을 태우고 가는 나귀, 때로 고집을 피우고 때로 힘들어 하더라도 너그럽게 받아 주고 달랠 일이다.

▲ 가시덤불에 몸을 던진 프란치스코(왼쪽), 나뭇짐을 진 당나귀들.ⓒ김선명

광장으로 다시 나오니 나귀들이 또각또각, 나뭇짐을 잔뜩 등에 지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맨 앞 나무꾼이 끄는 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나귀들이 안쓰럽다. 당나귀들을 무척 사랑했던 어느 시인이 생각난다.

주여, 당신은 사람들 가운데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괴로워하고 사랑하나이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그들이 내게 전해 준 말로 글을 썼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삼종(三鐘)의 종소리가 웁니다.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때로 반대편으로 가는 일도 마다 않는, 당나귀처럼 고집 센 몸입니다. 하오나 이 몸과 마음, 당신이 지으셨으니 제 길을 이끌어 주십시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저는 가겠습니다.... 포조 부스토네의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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