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11]

‘선교’의안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장 ‘교회가 제시하는 선교 이념’은 선교의 개념과 선교가 교회의 근본 사명임을 밝히고, 선교의 자세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어제의 한국 교회의 선교’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한국 교회 200년 역사를 선교의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또 3장 ‘오늘의 한국’에서는 현대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당시 교회의 선교 정책을 검토하고 있고, ‘선교 대책’이라는 제목 아래 마지막 4장에서는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의 방법론을 개인부터 본당, 교구, 전국 단위로 확장해 살피고 있다.

이 글은 각 장의 내용을 정리해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다. 대신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과연 ‘선교’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한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선교 의안을 살펴보기에 앞서 사목회의 의안집에 서문 격으로 붙어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로 선교 의안의 문을 열어 보기로 하자. “사목회의는... 교회가 토착화와 민족문화 창달에 적극 기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의 인간의 삶, 곧 문화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고 안에서부터 복음의 정신이 누룩의 구실을 못한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 추기경의 이 말은 우선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민족의 문화, 곧 이웃들의 구체적 삶의 양식에 뿌리내리도록 복음의 정신을 살아 내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는 개념적 이해를 넘어 삶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에 응답하듯 선교 의안 1장은 선교 방안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운데 ‘선교교령’을 인용해 “우리는 복음 선교의 내용에 전적으로 충실하면서 현대인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방법을 대담스럽게 또 지혜롭게 발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40항)고 밝힌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하느님 말씀이 ‘오늘 이곳’에 강생하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문화, 사회, 학문과 다른 종교 및 비종교인과 대화해야 하며,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복음이 뿌려질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어 “이러한 분석이 선행되면 그 다음 단계로 교회는 뚜렷한 선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교회가 면밀한 선교 정책을 수립하여 선교 활동을 추진하지 않는 한, 현대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선교를 수행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 대화, 폴 고갱.(1885)

삶의 대화가 선교

‘선교 교령’은 “순례하는 교회는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2항)라며 교회의 본성이 선교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교령이 ‘선교’(mission)를 말하고 있다면 사목회의 의안은 ‘복음선교’(evangelizing mis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뉘앙스에서 약간의 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교령과 의안 모두 ‘선교’가 단순히 언어나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만 의미를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위에서 의안이 강조한 것처럼 ‘복음이 뿌려질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교는 단순히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현시대의 문화와 복음의 상호선교’로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복음선교’라는 용어에서 그 상황적 내포한 뜻이 좀 더 드러나며 선교 의안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라 보인다. 복음 선교는 김 추기경이 언급한 ‘토착화’를 선교의 관점에서 풀어 놓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토착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하느님과 우주의 대화’ 또는 ‘복음의 예수와 이 시대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인간군상의 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신학적으로 말해 본다면, 토착화는 무소부재한 하느님의 말씀이 우주 모든 만물의 몸을 입는 육화이며,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에 잉태되어 꽃피고 열매 맺는 모든 순간이자 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대화’는 단순히 시간 날 때 간식 먹으며 하는 한담이 아니다. 일찍이 대화의 중요성을 간파한 아시아 주교들은 197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으로 모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핵심으로 ‘대화’를 꼽고 이런 대화 정신을 다원적인 아시아 상황에 맞게 ‘삼중 대화’, 곧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과의 대화, 다원적 문화 및 다양한 종교 전통과의 대화로 구체화함으로써 공의회 정신을 ‘토착화’하여 계승했다. 이어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연합회(FABC)에서 아시아 주교들은 “선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고 아시아의 상황에서는 대화라는 독특한 양상을 띤다”고 선언함으로써 ‘삼중 대화’는 아시아 상황에서 ‘복음선교’와 같은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고 본 것이다.

다시 선교의안으로 돌아와 당시 현실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보면,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한국 사회/교회가 겪고 있던 문제가 당시와 놀랍도록 비슷하며 그럼에도 아직도 해결이 요원하다는 데에서 절망스러운 비애감이 들기도 한다. 의안이 ‘선교 대책’을 논하고 있는 4장에서 지적한 당시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렇다.

- 도시화 현상에서 오는 인간 소외와 귀속감 상실
- 항구적인 부동 인구의 증가
- 급증하는 노년층의 문제
- 입시경쟁에서 낙오되는 수많은 청소년 문제
-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근로 조건하에 있는 젊은 근로자층
- 대중매체의 무분별한 홍보활동으로 올바른 판단 능력이 흐려진 국민의 정신풍토
- 갈수록 과소화 되는 농어촌 사회의 문제
- 만성적 부정부패로 사회 전반에 깔린 상호 불신감

한국 교회의 영적 세속주의와 선교

그 심각성으로 보자면 이러한 현상에 3배쯤을 곱해야 오늘 우리가 체감하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을 듯하다. 선교 의안은 이외에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여러 가지 임에도 교회가 이러한 문제를 오늘까지 ‘특수 사목’ 분야로 간주한 점을 지적한다. 곧 본당을 교회의 정상적인 활동의 장으로 보아온 반면, 사회 문제를 특수 분야로 봄으로써 ‘예외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해 온 것은 “'건강한' 사람보다 '병든'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선교 의안은 “교회가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제에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선교와 사목 체제의 구조적 개선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와는 무관한 피상적, 이념적 종교 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인 신심의 만족과 심리적 평화만을 위주로 하는 영혼의 일시적 진정제 역할을 하는 종교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종교 사업체가 돼 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는 마치 21세기 한국교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처럼, 현재의 모습을 아주 적확하게 그리고 있음에 전율까지 느낄 정도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처에서 ‘구조적 개선’이 지난 30년간 거의 전무하며 ‘신도 500만 시대’니 ‘2020운동’이니 하며 숫자의 물신화에 빠져 있는 ‘영적 세속주의’와 더불어 이미 한국 교회가 ‘종교 사업체’로 전락해 가고 있음을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 선교 현실을 분석하여 적극적인 선교 방안 목적으로 의안이 제안한 ‘선교연구소’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 현실은,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전체가 사장되어 간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인다. 한국 교회가 ‘선교’를 말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숫자 놀음’을 그만두고 모든 인간,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의 전체적이고 진정한 인간발전’(holistic human development)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실천한 선교사로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는 고 이태석 신부의 말로 글을 맺고자 한다. 그는 인종 학살로 유명했던 다르푸르의 이슬람 아이들을 인근 지역으로 데려오고 이들에 대한 ‘개종’을 놓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는 “(예수님은)그들을 개종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계심에도 분명히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안아 주며 위로해 주실 것이다. ... (개종의) 결과나 수치, 틀에 박히지 않는 예수님의 깊고 넓은 사랑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교”라고 확신에 차 말하고 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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