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은 각자의 전통적 영역을 떠나 사는(이향, diaspora) 여러 동방가톨릭 교회가 기혼 남성을 사제로 서품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교령은 지난 6월 14일에 동방교회성 장관 레오나르도 산드리 추기경이 서명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 뒤 교황청이 내는 <사도좌 관보>에 실려 발표됐다.  

▲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성 미카엘 대천사 동방 가톨릭 성당.(사진 출처=www.indcatholicnews.com)

원래 동방가톨릭교회는 기혼자를 성직자로 서품할 수 있었으나, 1890년 당시 인류복음화성은 미국의 라틴 전례 가톨릭 주교들의 항의를 받고 미국에 살던 루테니아인 동방가톨릭 사제의 혼인을 금지했다. 그리고 1929년에 이 조치는 남미와 호주에도 확대 적용됐다. 루테니아인은 지금의 체코에서 폴란드 남부, 우크라이나 등에 사는 동유럽 민족으로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서는 최대 5000만 명에 이른다.

산드리 추기경은 이번 교령에서, 그 금지 법령이 시행된 직후에 “20만 명 가량의 루테니아인 동방가톨릭 신자들이 정교회 신자가 됐다”고 밝혔다. 현재 루테니아 동방가톨릭 신자는 약 65만 명이다.

이 교령은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가톨릭으로 오는 성공회 신자들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이 따로 속인 교구를 이루고 기존 기혼 성공회 사제를 가톨릭 사제로 서품하기로 함으로써) 기혼자 가톨릭 사제의 존재를 분명히 인정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2012년에는 “혼인한 사제들의 직무 활동은 옛 동방 전통들의 구성요소”라고 강조하고, 동방가톨릭 교회들이 이 전통을 잘 유지하도록 권고했다.

이 교령에 대해, 영국에서 멜키트 전례 그리스 가톨릭교회 신자 담당인 로빈 기번스 신부는 “다양성과 존중 속에 일치된 교회를 이루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겸손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환영하고, “서방 교회에서의 사제 독신은 하느님에게서 비롯한(divine)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규정에 의한(imposed) 것임을 되새겨 준다”고 논평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 가톨릭 뉴스>에 따르면, 기번스 신부는 독신 성소가 혼인 성소보다 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동방 교회에서는 독신은 수사와 수녀, 그리고 (평신도) 독신자의 성소이지 사목 직무를 하는 부제와 사제에 연계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기혼자의 부제와 사제 서품은 허용되지만, 서품 이후에는 혼인할 수 없는데 대개는 서품을 앞두고 혼인한다. 본당에는 대개 기혼 사제가 배치되며 비혼 사제가 배치되는 예는 적다. 이와 달리 개신교나 성공회에서는 서품 이후에도 혼인할 수 있다.

동방가톨릭 교회란 1054년에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놓고 가톨릭교회가 서방 교회(지금의 ‘가톨릭교회’ 더 정확히는 라틴 전례 가톨릭)와 동방 교회(지금의 정교회)로 분열된 뒤, 여러 정교회 분파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동방 전례와 관습은 물론 주교 선출 등에 자치권을 유지한 채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함으로써 다시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된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즉 지금의 가톨릭 교회는 좁은 뜻으로는 한국 가톨릭과 같은 라틴 전례 가톨릭만 뜻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여러 동방 전례 가톨릭 교회까지 포함한다. 전 세계의 동방가톨릭 신자는 대략 1600만 명이다. 이들은 대개 일정한 민족적, 지역적 단위성을 띠고 있지만, 19세기부터 동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많이 이주하면서, 그리고 20세기 후반에는 인도와 중동인들이 북미와 호주 등으로 많이 이주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들에 대한 관할권 문제가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라틴 전례 가톨릭 주교들과 동방가톨릭 사이의 갈등으로 불거졌다. 특히 20세기 전반기에 이들에 대한 라틴화가 많이 강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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