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프랭크 저, 함규진, 임도영 역,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갈라파고스, 2013

이 책은 2008년,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적 파국을 맞이한 미국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특히 정치권에서의 넌센스한 변화들을 설명하고 있다. 비록 미국 이야기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강한 기시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의 과장이 허락된다면, 마치 ‘평행이론’처럼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국과 미국은 거의 비슷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08년 미국은 ‘리먼 브라더스’ 등 대규모 금융회사가 줄줄이 도산하는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이 파산하거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규제받지 않던 투자 은행들이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금융파생 상품들을 판매했고, 그 뒤에는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의 탐욕과 부도덕, 집권 세력인 공화당의 무능과 부패가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 루즈벨트의 민주당 정권이 대공황에 대처했던 방식, 즉 국가가 공공부문의 지출을 늘리고 엄격한 규제를 통해 시장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2009년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의 당선은 루즈벨트의 재림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자본주의의 신성한 삼위일체, ‘규제완화’ ‘민영화’ ‘자유무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더욱 우경화되었고, 2010년 총선에서 공화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국의 주도권 또한 그 모든 파국에 책임이 있는 세력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최근의 중간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이들의 위세는 결코 꺾이지 않고 있다. 누구도 그 엄청난 고통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오히려 감옥에 갈 이들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과 같은 전문가들도 그 같은 상황을 묵인하거나 인정해 주었다.

한국의 상황도 미국에 대응하며 평행선

▲ 토마스 프랭크 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갈라파고스, 2013

한국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CEO대통령을 자처한 이명박과 여당은 자신들이 그토록 무능하다고, 모욕에 가까운 공격을 퍼부은 전 정권보다 훨씬 더 초라한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수입쇠고기 파동’, ‘4대강사업’,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언론 장악’, ‘민간인 사찰’ 등등 임기 중에 터진 수많은 사건과 부정부패가 있었음에도, 그것도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는 갖고 있지 못해 보이는, 그리고 어떤 인간적 매력도 찾아보기 힘든 옛 독재자의 딸을 내세운 여당이 일궈낸 값진(?) 승리는 분명 미국 우파들의 그것과 비견될 만한 것이다. 덧붙여 그렇게 집권한 한국의 현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각종 공공영역의 ‘민영화’, ‘규제완화’, ‘보편복지의 폐지’ 등 또한 미국 우파들의 노선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지면의 8할 이상을 미국 우파들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치졸한 프로파간다, 이를테면 ‘이상주의적 포퓔리슴’ ‘3류 언론과 대중문화의 활용’ ‘역사적 사실의 편의적 왜곡’ ‘좌파를 비난하면서 좌파의 수법을 흉내 내기’ 등을 꼬집는데 할애한다. 실제 책의 내용 대부분이 우파들에 대한 야유와 조소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이 보다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분석 그리고 쓸 만한 대안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만, 정작 저자의 목적은 그런 것보다는 신랄한 ‘폭로’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때, 어떤 재앙이 올지를 ‘경고’하는데 있는 것 같다. 실제 이 책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묵시론적 경구로 끝난다.

“… 모든 문제들은 더욱 악화될 게 뻔하다. 불평등, 지구온난화, 금융 버블. 그러나 미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시보다 더욱 생생한 꿈을 좇아, 만인이 만인에 대항해 싸우는 그곳, 그들만의 낙원으로 더욱 빠르게.”

실패의 이유, 이념의 공백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 현실을 두고 고민해 볼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본론의 마지막 장에서 2009년 위기의 순간에 집권한 민주당의 실패와 그 이유를 지적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로 말하면 “이념의 공백”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오바마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재원마련을 설명을 하면서 특유의 언변으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건 계급투쟁이 아닙니다. 간단한 수학입니다. 어디선가는 돈이 나와야죠.” 저자가 보기에 민주당,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들이 좌파로 매도되는 것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썼다. 대신 그들 자신들은 유능하고 인텔리한 정권, 미국의 전통인 실용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의심할 바 없는 애국심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을 구원해 낼 엘리트들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아마 실제로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도한 자의식들이 현재 미국이 처한 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를 국민들에게 환기시키기고, 그것에 대응하는 자신들의 철학과 이념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개별 정책들의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들을 설명하는데 급급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우파들은 끊임없이 얼토당토 않는 파시스트니, 좌파니, 공산주의자니 하는 색깔 논쟁을 부추겼고, 똑똑한 그들로서는 무지한 이들의 계몽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정책이 그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멋진 대타협을 이뤄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왜 위대한 미국이 그런 재앙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던 국민들은 우파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 버렸다. 공화당을 지지한 모든 미국인들이 우파의 단순하고 조야한 국가관, 사회, 경제관에 동의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미국인들의 눈에는 적어도 민주당 보다는 그들이 앞으로 미국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고 있는 세력처럼 비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수세에 몰리자, 공화당과의 타협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젠틀하고 온건한 집단인지를 보여 주며 중도로 회귀해버렸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쿨하고 나이스한, 부유하고 교육받은 자유주의자들의 품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상황과 놀라우리만큼 유사한 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의 패착, 야당으로 돌아간 구 민주당의 계속되는 몰락, 야권의 지리멸렬. 그에 비해 갈수록 빛을 발하는 새누리당의 놀라운 현실 적응력과 선동의 기술. 물론 미국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현실의 다른 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의 마지막 경고다. 지금의 이러한 왜곡되고 기형적인 시장과 정치현실이 계속되는 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내 삶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항시적 불안은 가중될 것이며, 가난한 이들은 계속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모멸감을 주고, 의식조차 없이 행해지는 일상의 폭력은 더욱 잔인해질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는 끔직한 상황들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한줌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삶이 황폐해지는 세상, 그리하여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치닫는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다. 저자의 가장 끔찍한 경고는 이렇다. “이제 남은 일은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고윤수
(토마스)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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