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여자수도회 사도좌 방문, 그래도 반기는 이유


조안 치티스터 수녀
지난 주 교황청이 미국 여자 수도회를 순시할 것이라는 공식 발표를 접했을 때 내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조금은 놀랐지만,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우리가 합당한 대접을 받을 것만 같았다.

수녀는 하느님께 온전히 바친 자, 일부만 바친 자와 다르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60년대까지 수년간에 걸쳐 내가 가장 분명히 기억하는 교회의 모습은 해마다 수녀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강론을 했다는 것이다. 강론대에서는 수녀들이 하느님과 매우 가까우며, 매우 숭고한 소명을 받았고, 온 삶을 하느님께 바쳤기에 일부분만 바치는 이들과는 다르다는 말이 들려왔다.

용기있는 수녀 생활에 대한 이러한 강론을 우리는 연례 교구 피정에서도 들었고, 고등학교 성소의 날에도 들었으며, 연중 내내 성당 안에서도 열렬한 어조로 들려 왔다. 사제들은 수녀들이야말로 특별하고 거룩하며 그냥 혼인을 한 여자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니 수녀들은 어렸을 적 나의 우상이며 영웅이고 역할 모델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한 찬사를 받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와 영향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전국 어디서나 가톨릭 여성 신자라면 한번쯤은 수녀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수녀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수녀들이 1866-1917년에 걸쳐 469개의 가톨릭 병원을 세웠다. 수녀들은 교회 지도자들도 어쩔 줄 몰라 했던 남북전쟁 가운데서도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다. 같은 시기에 교구 학교에 5만명 이상의 수녀 교사들을 지원했으며, 1920년까지 6,550개의 가톨릭 학교에 2백만 명의 학생을 두었고, 실질적인 목적에서 미국에 가톨릭 학교를 세웠다.

수녀들, 중세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그러나 갑자기 60년대 초 어느 시점에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여학생들이 입학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수가 학교를 떠났다. 매우 이례적인 사회 현상이었다. 수녀들의 삶이 더 이상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여학생들이 발길을 뚝 끊은 것과 발맞춰 교회의 강론도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녀들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들과 사회 전반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곧 그들이 살고 있는 중세의 삶의 방식을 쇄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100년 이상 몸담아왔던 직무들도 마찬가지로 쇄신이 필요했다. 참으로 강인했던 수녀들은 생활 방식을 쇄신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요구에도 부응했다. 변화를 명령했던 교회에서조차 아무런 도움도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였다.

초기 소규모 창립자들을 자극하여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 국가에 이민해 온 가난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 더 깊은 신앙심을 심어주기 위해 삶을 바칠 수 있게 했던 열정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열정으로 1960년대 세대들도 당시에 고립된 가톨릭 세계에서 뛰쳐나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용감히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립 학교를 세웠던 수녀들이 이번에는 그것을 그 안에서 교육을 받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넘기고 뭔가 다시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병원을 팔고 양로원과 무료 진료소를 열었으며,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주택 계획도 세웠다.

더 숭고한 부르심이 아니라 더 참된 부르심

수녀들은 각종 센터를 개설하여 새로운 가톨릭 세대를 가르쳐 평화를 이룩하고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다. 권력자들은 전쟁을 외교 정책으로 이용하기 시작하고 서구 자본주의가 경제 식민주의라는 새로운 브랜드 위에 군림할 때였다.

수녀들은 영성 기관을 세워 신앙과 헌신의 징표로 의례가 아닌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세대들과 수세기에 걸쳐 무르익어 온 영성과 기도의 열매를 나누고자 하였다.

수녀들이 주변 세상에서 물러나 은둔하고 싶었을지라도, 보육원 설립에 전념했던 이유는 여성들이 집에서 자녀 양육에만 신경쓰는 호사를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만한 학위나 기술 자격증이 없는 편부모를 위하여 평생 교육을 시작했으며, 교회와 국가가 주입한 왜곡된 여성성 때문에 손상을 입은 여성의 자존감과 영성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여성을 위한 신학과 심리학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면서도 “다르기에” 제단에서 봉사하기에는 합당하지 않다 해서 전통적으로 신학 교육에서 여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생긴 오해를 풀기 위한 강좌를 개설했다. 또한 교회 일치 기도 모임을 시작했고, 인종 차별 폐지를 호소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법률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폈으며, 생태 교육을 시작했고, 병원의 책임자가 되었고, 교도소 활동도 계속하였다.

수녀들이 함께 하는 곳에는 더 이상 가난한 이도 병든 이도 고통받는 이도 없었다.

기도 안에서 서로 다른 공동체들과 “하느님께 삶을 봉헌하며” 동시에 길거리 선교를 계속하고, 시골에도 영성 센터를 개설하였으며, 가르침과 강연을 계속하면서 영성과 피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매맞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한 데이케어센터도 운영했다. 수녀들은 “더 숭고한 성소”를 바라지 않았고 참된 성소를 살기 바랐을 뿐이었다.

수녀들은 일반 사회인들의 퇴직 연령을 지나서까지 그러한 일들을 계속했다.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길거리 선교를 계속하며, 자선 활동을 펼치고, 사제 없는 본당을 꾸려갔으며, 환경보호 운동에 동참하고, 소외 계층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고자 했다. 미국 안에 전혀 새로운 교회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사도좌 순시를 반기는 까닭

이렇게 50년 이상이 지나고 마침내 이유는 고사하고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전 통고나 경고도 없이 순시 발표가 있었기에, 여자 수도회와 교황청의 공식 통로인 여자수도회장상회의까지도 놀랐다. 미국 여자 수도회들은 몇 주 후면 “사도좌 순시”의 대상이라는 통지를 받았을 뿐이다. 보통 일이 아닌 전국에 걸친 막중한 일이다. 수도생활과 봉헌생활단 성 장관 프란시스 로데 추기경은 교황청의 이러한 이례적인 순시의 목적을 “미국 여자 수도자들의 삶의 질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서한에서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봉사에 나선 사람의 수가 그러한 수도 생활의 한 면과 관계가 있다면, 여자 수도자들의 삶의 질은 탁월하며, 그 영향은 광범위하고 심오하다. 여자 수도자들의 삶은 영성적으로 아름답고 아름다운 영성이다. 쉽지 않지만 가치있는 삶이다.

교회에서 아무런 지원이나 승인, 이해나 격려도 받지 못한 지난 50년은 쉬운 게 아니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교회는 이러한 삶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한편으로 이번 순시를 반긴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교회가 진정으로 여성 수도자들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성명을 발표하고 “이들은 훌륭한 영성 생활을 실천하는 훌륭한 여성들이다.”라고 할 때다. 크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여성들의 수도 생활이 사라진다면, 또는 혹시라도 제도 교회 밖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수녀들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의 교회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각해볼 일이다. 몇 번 더 강론을 다시 할 수도 있으리라. 수도 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번역/김미경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2.16. 조안 치티스터(성베네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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