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서 보낸 4년]

 

[자기소개-곽제규]

나는 1990년 부산에서 태어난 20살 청년이다. 제도권 초등-중등학교를 다니면서 무한 경쟁과 지식교과 몰입교육이 내 몸에 맞지 않다고 판명 받았다. 그리고 2004년 겨울 간디자유학교(현 금산간디학교) 예비학교에 참가하여 2005년에 입학했다. 2학년 2학기부터는 휴학을 하고 <하자센터>라고 불리는 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에 있는 프로젝트형 대안학교인 글로벌 학교에 들어가서 1년을 보냈다. 2008년 다시 간디학교에 복학하여 1년 반을 다니고 졸업요건을 갖추고 지난 12월에 졸업했다.

여행, 인문학, 법, 농업,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한다.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며 배우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미국, 필리핀, 태국, 한국 땅을 두루 밟으며 싸돌아 다녔다. 낙관적이고 넉살이 좋지만 자기비판에 취약하고 상대방을 쏘아 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2008년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에 참가해 또문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후에 <원피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작품으로 아하!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주최한 청소년의 성 백일장 공모에서 감상(1등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는 없지만 앞으로 쓰려고 한다.

태종대에서, 곽제규


막 스무 살이 된 십대의 이야기

"엄마 나는 은제 어른 되요?"
"닌 아직 멀었다."
"왜요?"
"아직 고추에 털이 없잖아!"


어렸을 때 나는 내가 평생 십대로 사는 줄 알았다. 시간이 느리게만 느껴졌고 나와 어른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집에서 TV를 볼 때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가셨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셨다. 세금, 결혼 이런 건 내가 모르기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결정적으로 어른들은 나와 생긴 게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어른이 된 다는 건 내게 굉장히 큰 일이 생기거나 세일러 문들이 변신하는 정도의 의식을 치러야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나의 신분증은 학생증에서 주민등록증으로 변했다. 그 사이 온 몸에 털도 나 있었다.

"일어나라 이놈 시키야, 지금이 몇 신데......."
"아 꼭두새벽이잖아요. 잠 좀 자게 내버려 두세요......."
"야 임마, 시계가 12시가 넘었는데 무슨 꼭두새벽!"

엄마와 동생에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다 돼 있었다. 1월 1일 새벽에 잠들어 오후 12시가 다 돼서야 깬 것이었다. 막상 스무살이 되고 나서 든 생각은 '세일러 문 같은 건 없구나.'하는 것이었다. 19년 12개월 31일을 산 자나 20년 2개월 27일을 산 사람과 다를 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이미 오늘도 내일도 나는 십대와 다를 것 하나 없는 20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경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20대는 그저 십대의 연장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대체 사회가 왜 어른과 청소년의 틀을 이렇게 명확하게 만들어 놓았는지도 의문이다. 어렸을 땐 스무 살, 어른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책상에 앉아 선생님 눈을 웃는 얼굴로 응시하며 빨리 이 망할 놈의 십대를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막상 되고 보면 진짜 실망 중에도 대 실망에 왕 실망이 바로 스무 살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해서 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빌빌거리던 사람이 소주를 몇 병 씩 마셔도 끄떡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었다. "와 이제 스무 살이다!"를 외치며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하던 친구들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어 나가 떨어졌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비판적인 말만 하면 지독한 냉소로 일관하던 친구 성격이 어느 날 갑자기 공자처럼 변하는 것도 아니다. 변한 거라곤 검색엔진에서 필터링 되던 검색어들이 죄다 검색 가능해지고, 친절하게 원하는 날짜에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가 병무청에서 날아오는 것, 집에선 날로 먹을 생각 말고 벌어서 쓰라는 압력이 들어오는 정도가 다다. 그러니 그렇게 들 뜨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사는 건 이래도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는 사회적으론 그 차이가 큰편인 것 같다. 청소년 때는 어른이 아니라서 못하는 게 많아서 억울했는데 막상 스무살을 찍고 나니 청소년이 아니어서 못하는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청소년 ~~ 백일장, ~~ 토론대회 등. 일찍이 많이 나갈 볼 걸 하는 마음에 아쉬움만 커져 간다.

청소년이었으면 그나마 유별나게 보이던 나의 글도 이젠 더 이상 아니다. 어른이라는 큰 틀 안에 집어넣으면 수 천 만 네티즌 들 중 한 명이 쓴 푼수의 글에 불과하다. "열심히 살 걸."하는 후회는 누구나 하지만 청소년 시기라는 건 지나치고 나면 그 뿐이다. 스무살이 지나면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러니 불만스럽겠지만 청소년이라는 틀 안에 사회가 잡아 가둬 뒀을 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한 없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 하는 게 뭔지 찾아도 보고 직접 해봤으면 한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볼 것을 추천한다. 십대에 꾸던 꿈을 20대가 되면 하겠다고 접어두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특별한 시기에 꾸던 꿈을 미루는 건 오늘의 숙제를 절대 오지 않을 내일로 미루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는 십대에 했던 고민들을 풀어놓고자 한다. 나는 내가 했던 고민이 절대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유별나고 특별한 고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십대들이 하는 평범한 고민들 중 하나를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독자들이 더 날카롭게 판단하시리라 믿는다. 글 솜씨가 좋지 못해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가차 없는 비판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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