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한상봉]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었다지만, 아직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최근 작고한 가수 신해철이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며 불렀던 노래 ‘Goodbye Mr.Trouble’처럼, 대한민국의 문제들이 말끔이 해결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의심한다. 신해철은 “탄식으로 단을 쌓고, 한숨으로 향을 피워, 이제 꽃 한송이 올려 희망이라 부른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대가 남겨둔 화분에 눈물을 뿌린다”면서 “남겨진 일들은 남은 자들의 것일 뿐” 끝까지 살겠다고, 죽어도 살겠다고, “우리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다”고 노래했다. 이런 ‘개념 있는’ 가수 가운데 이승철도 있고, 이승환도 있다. 그리고 김장훈도 있다.

가수 김장훈이 콘서트가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범국민대회’에서 무대에 올라가 한 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자리에서 김장훈은 지인들이 ‘왜 가수가 이런 일까지 하느냐?’고 말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수는 먼저 세상을 품에 안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고 말이다. 이게 비단 가수뿐이겠는가? 4박 5일간의 교황 방한은 세월호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교종의 이러한 행동을 문제 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형제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

▲ 김장훈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무대에 섰다. ⓒ한상봉

김장훈의 애통함, 우리 주교들은?

문제는 가수 김장훈 만한 영성을 소유한 종교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교회현실이다. 김장훈은 교황방한 이후에 이렇게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이번 교황님의 방문과 메시지는 예상을 뒤엎고 세월호 문제에 직접적으로 울림을 주시는 그런 방문인 듯합니다. 단 한분의 울림이 그 누구도 주지 못한 평화와 치유를 주셨는데, 문제는 떠나신 다음인데. 그 위대하고 거대한 메시지와 울림을 반드시 받아야 할 사람들이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인데. 정작 받아야 할 분들은.... 안 받겠죠? 그래도 늘 그래왔듯이 민초들은 굳건하게 해 나가야겠죠?”

프란치스코 교종이 남긴 메시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똑같은 질문을 교회 지도자에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이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했던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씀만 하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종교 지도자란 정치인들처럼 공적인 자리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말을 아껴야 하고, 기왕에 할 말이면 분명하고 또렷한 어조로 발음해야 한다. 그래야 구구한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후 206일 만인 지난 11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통과됐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유족 가운데는 아이들이 기쁘게 공부하던 학교에서 어이없이 수장된 팽목항까지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했던 분도 계시고, 40일 넘게 단식을 하신 분도 계신다. 보다 못해 하루씩이라도 곡기를 끊고 이 아픔에 동참한 국민도 있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생각에 잠 못 이루고, 차마 먹은 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해 단식 기도에 돌입했다는 주교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노란 리본이야 누구나 달 수 있지만, 몸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여전히 남는 대목이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13만 936인 천주교 선언에 윤공희, 최창무 주교 등 은퇴 주교뿐 아니라 현직 교구장들을 포함한 16명의 주교가 참여했다는 사실은 교회에 대한 희망의 한끝을 보게 한다. 서울대교구의 경우에 사회사목 담당 유경촌 보좌주교가 서명에 참여했으나 정작 염수정 추기경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애석할 따름이다. 여기서 유족이 느꼈을 애통함을 우리 주교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지, 내 일처럼 ‘불타는 심장’으로 느끼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대통령 전상서’를 쓴 사람은 가수였다, 김장훈. 그는 “너무 애통한 사건에 비통함이 크나,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 감히 이렇게 글을 올린다”고 했다. 그는 말을 잇기 전에 “저의 분노는 절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이며 국민으로서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데’ 휘말리기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가수나 연예인, 배우들도 그러할 것이다. 김장훈은 오해 말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정치적인 일이면 발언조차 안 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 간여도 싫고 발언도 싫고 관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 그런 사람인 것 대통령께서는 잘 아시잖습니까?”

김장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의 기본은 사람과 사랑이어야 한다”고 했다. 종교의 기본도 “사람과 사랑”인 것처럼. 그리고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다며 “제발, 국민들을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정 마비’까지 운운하는 지경에서, 세월호 참사로 우울증 걸리는 국민들이 많다는데, 멀쩡한 사제들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굶고 있다는데, 주교들은 여전히 ‘심사숙고 중’이었다. 사랑에는 계산이 없는 법, 정말 사랑한다면 무조건 공감하고 망설임 없이 나서야 한다. 김장훈은 단식을 하다가 실신해서 여러 차례 병원에 실려 갔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답답하죠? 그래도 희망과 긍정의 마음으로 광화문에 갈 준비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의 비통함을 담아 다시 희망을 노래하는 김장훈 ⓒ한상봉

김장훈 “필요한 곳에 자신의 ‘명성’이 옳게 사용되기를 희망할 뿐”
‘식별’이란 무한정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김장훈은 개신교 목사인 어머니 김성애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검정고시에 합격해 대학에 들어갔다. 전인권, 김현식, 유재하를 흠모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 1991년에 낸 첫 앨범에 타이틀곡으로 실린 것은 ‘늘 우리 사이엔’이라는 노래였다.

“난 어제처럼 웃을 수 있을까
이젠 쉬고 싶은 지친 내 가슴
또 누굴 위해 오늘은 있을까
이젠 기대고 싶은 내 야윈 어깨
너무도 커다란 내 마음의 빈자리
너무나 쉽게 오갔던 우리들의 사랑
그 많았던 날 속에 우린 아픈 기억만
그 힘겹던 시간들 이젠 너무 그리워
너의 아픔 모두 이해하기에
나의 마음 너무 좁았고
늘 우리 사이엔 하얗게 비가 내렸지”

마치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노래 같다. “너의 아픔 모두 이해하기에 나의 마음 너무 좁았다”고 했다. 그래서 “늘 우리 사이엔 하얗게 비가 내렸지”라고 가슴 아프게 반성한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예수회 출신답게 ‘식별’을 강조한다. 그러나 ‘식별’이란 무한정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만 하다보면 때늦은 후회를 거듭하기도 하고, 세월호 희생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리스도’를 외면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요한 23세 교종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갑작스러운 성령의 이끌림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이란 본래 ‘갑작스러운’ 것이다. 사랑은 셈하지 않는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오해와 비난조차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음적 요청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일단 달려간다.

김장훈을 생각하며 교회는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김장훈은 그동안 150억 원 이상을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기부 천사’인데, 김장훈은 기부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지 않는다. 공공연히 기부함으로써 많은 다른 연예인들이 재능기부든 뭐든 세상을 위해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120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살고 있는 김장훈에게 이것은 진실이다. 그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연예인의 기부는 알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를 잘 할 것 같은 연예인 1위에 뽑히고, 대통령 표창 수여자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김장훈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표창 받기를 거절했다. 그는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필요한 곳에 자신의 ‘명성’이 옳게 사용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교종 프란치스코, 이분이 방한 당시에 보여 주었던 모습도 그러하다. 텔레비전이 생중계 하고 신자들만 17만 명 이상이 모였다는 광화문 광장에서 보란 듯이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만 의전차량에서 내려 그들을 위로했다. 그 자리에서 유가족들이 전달한 편지를 받고, 제의에 달린 호주머니에 넣는 장면을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았다. 교종이 굳이 ‘세월호 특별법’을 거론할 필요는 없다. 교종은 그 자리에서 한국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를 어루만졌다. 우리가 환대해야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 곁에서 함께 고난 받는 예언자가 되어야 함을 일깨웠다. 그가 교종이 아니었다면 그 파급 효과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위한 기꺼이 도구가 되어 주는 것, 그게 종교인의 책무다. 김장훈이 ‘스타급 가수’인 자신의 명성을 팔아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듯이, 고위 성직자들일수록 자신의 권위를 팔아 세상의 가장 가련한 영혼을 위무해야 한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상봉

이런 점에서 김장훈은 교종과 더불어 한국교회에 도전이 된다. 교회란 무엇인가, 다시 묻게 만든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을 위해 “나를 죽이고 너에게 가마!”라고 외쳤다. 그 절절한 사랑을 우리 교회가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을까? 교종은 교회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영적 세속화’라고 했다. 종교와 신앙 뒤에 숨어서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공과 재산을 희망하는 교회는 가장 비복음적이며, 반교회적인 교회다.

그래서 교종은 주교단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만약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별 쓸모없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정국, 한국교회는 쓸모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김장훈에게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교회는 ‘구원의 성사’라지 않는가. 교회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구원을 알리는 깃발이 되어야 한다.

* 이 기사는 <영성생활> 제48호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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