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평신도의 역사를 찾아서

3년 전, 고 양한모 선생님의 ‘신도론’ 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현시점에서 다시 ‘신도론’을 다시 써보자고 ‘평신도론 정립을 위한 공부모임’을 기획하여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신도론’을 기본으로 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천주교회에서 소개된 다양한 평신도론을 참고자료로 살펴보고자 했으나, 뜻밖에도 평신도를 주제로 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이번에 나온 ‘간추린 평신도의 역사’(후안 마리아 라보아 저, 가톨릭출판사, 2014)는 그 발간 소식 자체만으로도 반가웠다.

평신도를 주제로 한 교회사

“교회사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가치를 재발견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교회사를 평신도에게 초점을 맞춰 서술하면서,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지 않았던 초대교회 정신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 하고 있다. 2000년의 방대한 교회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200쪽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얇고, 주요 인물이나 용어에 대해서 간단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친절한 각주 덕분에,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독자들은 교회사 안에서 평신도들이 어떻게 활동했고, 또 어떻게 배제되었으며, 그럼에도 어떻게 자기 직분을 수행하고자 노력해 왔는지를 교회사의 큰 흐름 속에서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간추린 평신도의 역사', 후안 마리아 라보아 저,
     가톨릭출판사, 2014
이 책의 논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평신도 이해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이브 콩가르가 그의 저서 '교회 안의 평신도'(1953)에서 강조했던 내용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인다. 즉, 교회는 제도보다 성사성이 더 우선하고, 사제직은 서품 받은 개인의 소명이 아니라 공동체적 봉사라는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목과 권위는 공동체를 통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평신도’가 구별되기 시작한 시점을 교회 공동체가 점점 위계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봉사의 직무를 ‘사제화’하면서부터라고 본다. 그러면서 공동체 안에서의 동등함이 사라지고 평신도가 지도와 통치 역할에서 배제되고 수동적인 역할로 밀려난 것이 초대 교회의 정신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저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보편 사제직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교회가 성직주의로 경직되고 부패해질 때마다 복음 정신에 충실한 경건하고 헌신적인 평신도들이 교회를 쇄신시켜 왔음을 강조한다.

어떤 평신도 운동을 지향하는가?

이 책은 평신도의 공동체적 신앙 감각을 옹호하면서, 왜곡된 평신도의 위상과 그들의 교회 쇄신 노력을 재평가하는 점에서 새롭고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기에는 좀 망설여진다. 이 책의 곳곳에서 극단적 경건함을 추구했던 평신도 운동을 마냥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교계 제도 즉 교황에게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가 성인으로 시성되느냐 이단으로 단죄받느냐의 기준이 되었다”(48쪽)며 3세기의 몬타누스주의를 비롯하여 17세기의 얀센주의 등 이단 심판을 받았던 다양한 평신도 운동을 옹호한다. 이 평신도 운동들은 -당시 제도 교회의 교도권을 거부한 것이 이단 심판을 받은 결정적 계기이기는 하지만- 종말론적 예언을 앞세우고 엄격한 극기와 도덕으로 극단적인 경건주의 경향을 띠어 그 자체로도 문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이 책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최근의 평신도 운동 중에 가장 선구적인 이들은 재속회와 오푸스 데이”(174쪽)라는 구절에 이르면, 저자가 생각하는 평신도 운동의 이상적인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혹시 저자가 옹호하고 복원하려는 평신도 운동이란 경건주의와 극단적 금욕주의로 무장한 평신도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다시 ‘평신도’를 생각하며

혹자는 결국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고, 궁극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굳이 ‘평신도론’이나 ‘평신도성’을 도드라지게 부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구별이 오히려 교회 안의 계층 구조를 더 강화하고, 게다가 세속적이고 거룩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어원을 지닌 ‘평신도’라는 용어 자체가 차별적이고 배타적 요소가 많으므로 가능한 한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의 교회 역사 안에서 평신도는 분명히 존재해 왔음에도, 그 의미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던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평신도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교회 현실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위계적이고, 평신도의 교회 직무 참여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우리가 ‘평신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 현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평신도’를 생각해 보는 것은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성찰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교회 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교사와 예언자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봉사와 섬김을 통해 복음에 충실하고자 했으며, 세상 안에서 거룩함을 살려고 노력했던 평신도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 평신도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일상의 경험을 신학으로 풀어내고 싶은 평신도 신학연구자. 여성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이며, 특히 종교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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