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장영식

막내 며느리였던 할매는 겁도 없이 시아버님 생전에 찰떡 같이 약속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산과 고향 땅을 지키겠노라고.
그 약속을 맺은 며칠 후에 어르신은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그 땅에 765kV 송전탑이 건설된다고 할 때,
할매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다.
그것은 엄격하고 무서웠던 어르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한전과 경찰에 의해 할매의 약속은 산산조각이 났다.
할매는 어르신의 증명사진을 확대해서 집안에 모셨다.
아침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싸움 현장에 나가면서
“잘 싸우고 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고,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오늘도 잘 싸우고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0년이었다.
지금 선산에는 765kV 송전탑이 건설되었다.
할매는 송전탑을 볼 때마다
어르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신다.
오늘도 남몰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는
할매의 억울하고 한스런 애통한 심정을 누가 알꼬.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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