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수녀의 이콘응시]

예언자 엘리야 17세기, 비잔틴 박물관 아테네

En Cristo
자! 이콘을 바라보자.
‘야훼는 하느님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구약의 엘리야다.

고뇌하는 엘리야

이콘은 상징적인 것을 풍부히 담고 있다. 색깔에서, 밝기의 강도에서, 손의 모양에서, 어느 위치에 놓여져 있는 나무 한그루에서도 의미를 만날 수 있다. 때로는 이콘을 응시하면서 바위에, 나무에, 자세에, 눈빛에 마음을 모우면 그곳에서 예상치 않았던 은혜를 받게 되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콘이 가진 매력이자 은총이다.

먼저 이 이콘의 주위를 살펴보자. 거대한 두 바위는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 바로 여기에서 구원이 오리라는 예언과 또 하나는 엘리야 사이에 있는 푸른 빛을 띤 두 나무는 장소의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장소의 풍요로움이라!!!!
어떠한 풍요로움을 의미할까? 오른손은 턱을 괴고 왼손은 힘없이 무릎을 잡으며 일용할 양식을 물고 날아온 까마귀를 바라보는 엘리야의 모습에서는 분명 번민과 두려움이 보이는데...

엘리야의 이콘은 대부분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죽음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선택받은 영웅적인 그의 모습보다 고뇌하는 이 이콘이 인간적이라 좋다.

번민과 고독과 두려움의 장소가 바로 하느님의 현존

이 이콘은 그가 하느님의 보호 안에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들이 많이 내포 되어 있다.
먼저 나뭇잎과 바위, 엘리야의 옷 위로 빛의 번쩍임이 있는데, 그리스 이콘답게 빛의 강도를 상당히 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뜻한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영역에 속한 선택받은 자임이 분명한데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인 이유는 무엇일까.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의 물을 마시며 은둔 생활을 하던 엘리야! 모든 사건의 발단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아합 왕에게 말한 기분 좋지 않은 예언의 결과였다. 하느님께서 일러준 장소에서 숨어 지내며 그분께서 까마귀를 통해 아침에는 빵을, 저녁에는 고기를 날라다 주는 양식을 먹으며 지내지만(열왕기 상권17:1-7) 기운 차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다! 여기서 시대의 목소리가 담긴 고독을 만나게 된다. 그는 고독했다. 그의 번민과 고독과 두려움이 엉켜 있는 그 장소는 바로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다.

하느님은 그의 모든 것의 성역이 되어 주시고 보호가 되어 주신다. 하느님은 그의 연약함의 어깨가 되어 주신다. 엘리야의 고독이 되어 주신다. 엘리야는 그 모든 것을 안고 하느님 안에 머물렀다. 그러기에 그 장소는 온갖 인간적인 것 안에서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느님의 예언자, 로메로 대주교

“무죄한 사람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에 대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부하라!”고 말했던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
후(後)에 하느님은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엘리야 예언자 한 명과의 대결에서 바로 엘리야의 힘(力)이 되어 주신다.(열왕기상18:22 이하 참조)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자. 예언자다.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만난다.

남미에서는 3월이 되면 특별히 로메로 주교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많다.
“우리를 대신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의 소리가 되어 주십시오”
바로 그런 민중의 소리가 되었던 로메로 대주교! 힘없는 농민들이나 빈민 계층에서 더욱 이날 목소리를 높이며 곳곳에서 시위와 행진을 한다. 3월 24일이면 서거 29주년이 되는 해다. 이 한 달 동안 예언자들의 이콘과 함께 로메로 주교를 만나고 싶다. .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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