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19]

얼마 전에 다울이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울이 어머니, 다울이 건강검진 결과 받으셨죠? 다울이가 빈혈이 약간 있네요. 체중이나 키도 평균치보다 떨어지고요. 우유 먹고 고기 먹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성장이 많이 더뎌요. 성장 호르몬이나 항생제 때문에 고기를 멀리 하시는 거라면 집에서 직접 짐승을 길러서라도 단백질을 보충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씀을 해 주셨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에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시험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형편없어 선생님께 훈계를 받은 느낌이랄까? 건강검진 결과가 과연 건강 상태의 척도인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엄마로서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다울이마저 밥상 앞에서 “엄마, 나 고기 먹고 싶어. 나는 고기를 안 먹어서 키가 안 크는 거잖아.”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이지 분통이 터졌다. 실제로는 고기가 있어도 잘 먹지 않는 녀석이 다른 어른들의 생각에 너무나 쉽게 휩쓸리는 게 화가 나고 답답해서 말이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다울이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그렇게 고기가 좋으면 네가 직접 잡아서 먹어!”

사실 이 말은 고기를 꼭 먹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과연 사람들이 짐승을 기르고 잡고 요리하는 전 과정을 경험한다면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시골에 살다 보니 짐승을 잡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로 피가 튀는 현장이다.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 숨이 끊어진 뒤에도 움직이는 살덩이, 살육이 끝난 뒤에 남겨지는 흔적들.... 그걸 지켜보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내 손으로 짐승을 잡는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여태껏 닭을 키우지 않는 까닭도 잡아먹을 자신이 없어서니까.

하지만 할머니들은 누구나 능숙하게 그 일을 해내신다. 특히 닭 잡는 건 일도 아니다. 간단하게 그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목을 비틀거나 줄로 조여서 숨을 끊은 뒤에 뜨거운 물에 담가 털을 뽑는다. 털을 말끔하게 뽑은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부위별로 토막을 낸다. 그리고는 물을 끼얹어 핏물을 씻어 내고 요리하여 먹는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늘상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제사 때나 자식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닭을 잡는다. 닭을 통통하게 살찌우기 위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주는 수고를 수고롭다 여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내 경우에는 과연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안 먹고 말겠다 싶은데 말이다.

▲ 고구마를 먹고 있는 다랑이와 다울이. 고기 말고도 세상엔 맛있는 게 많다.ⓒ정청라

지난 추석 명절에 마을 가까이 있는 양계장에서 집집마다 닭을 두 마리씩 돌렸을 때도 우리 집만 그 닭을 거부했다. 고기를 먹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털옷을 입은 그대로 뻣뻣하게 죽어 있는 닭을 던져 주고 가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든단 말인가.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닭을 전해 주러 온 이장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하셨다.

“이 집엔 스님들만 사나. 공짜로 괴기 준다고 해도 마다하는 사람들이 있네.”

나는 오히려 이걸 마다하는 집이 우리 집뿐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한데, 다른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죽은 닭을 받아 들었다. 심지어 수봉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닭을 안 받고 그냥 보냈다는 얘길 들으시고는 무척 아까워하시기도 했다.

“오메, 아까븐그. 받아 뒀다가 애기들 멕이제만은...”
“아유, 됐어요. 그걸 어떻게 잡아요.”
“그거 잡는 게 뭐 어렵다고 그래싸. 정 못 하겄으면 내가 잡아 주제 어째.”

그러고 보니 수봉 할머니는 그야말로 진정한 육식주의자! 닭 여러 마리는 기본이요, 명절 때 잡아먹으려고 돼지를 키우시기도 하고, 산에서 끝집 아저씨가 잡은 너구리마저도 수봉 할머니 손에서 다듬어졌다. 그리고 우리 집 콩밭을 아작을 낸 토끼가 덫에 걸렸을 때도 그 토끼는 수봉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난생 처음 짐승을 잡은 다울이 아빠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수봉 할머니에게 가져다 준 것!

토끼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가여운 토끼 얼굴이라도 보려고 수봉 할머니 집에 달려갔더니 할머니는 그새 수돗가에서 토끼 고기를 손질하고 계셨다.

“토끼 괴기가 담백하니 그라고 맛나. 점심 때 볶아 가꼬 쌈 싸먹게 와. 잉?”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맛을 다시는 수봉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내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육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기르고, 잡고, 요리하는 전 과정을 무릅쓰는 사람만이 육식할 자격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육식주의자를 대단히 우러러보고 있다.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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