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15]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 가는 곳은 포레스타(Foresta), 포레스타의 성모 마리아라고 부르는 곳이지만 보통 줄여서 포레스타라고 한다. 포레스타는 ‘숲’이라는 뜻이니 우리 식으로 하면 ‘숲 속의 성모 마리아’ 정도가 될까. 1225년 작은형제들의 보호자였던 우골리노 추기경의 주선으로 프란치스코는 리에티에 와서 휴양을 하게 된다. 성인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성인은 네 사람의 동료와 길을 나섰지만 목적지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리에티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자신을 환영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포레스타의 조그만 성당으로 피신을 한다. 그곳에 의탁하여 50일 정도 머물면서 눈 수술을 받을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 포레스타 성지.ⓒ김선명

리에티에서 포레스타까지는 5.1킬로미터 거리다. 그것도 아스팔트 도로. 이름이 숲(foresta)이라 호젓한 산길을 상상하며 나섰더니 웬걸, 내내 아스팔트다. 인생이란 지도 없이 걷는 길이고 악보 없이 부르는 노래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악보를 볼 줄 모른다. 그래도 어떤 노래가 좋아지면 부르고 싶다. 악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노래를 배울까. 다른 방법이 없다. 자꾸 들으면서 가락을 외우는 수밖에.

▲ 나귀를 타고 치료를 받으러 가는 프란치스코.ⓒ김선명
포레스타 입구에 오니 타일에 프란치스코의 그림이 있다. 눈병 치료를 받으러 가는 성인의 모습이다. 이미 앞을 볼 수가 없어 나귀에 태워진 성인이 형제들의 인도를 받아 리에티로 가는 중이다. 그러나 성인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두 팔을 쳐들고 노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 포레스타는 찬미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태양의 찬가’를 지은 곳이 여기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시의 다미아노 성당에서 지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시시의 주교관에서 지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은 곳이 무에 대수랴. 성인에게는 모든 곳이 피조물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포레스타 성지에는 ‘태양의 찬가’를 노래하는 프란치스코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김선명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당신의 온갖 피조물들로 인하여
그 중에도 으뜸인 태양 형님의 찬미를 받으소서.
그로써 낮을 만들고 우리를 비추시나니
그 얼마나 아름다우며 장엄한 광채를 발하고 있는가
지존하신 당신으로 인해 그 뜻을 지니나이다.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달님 누나와 별님의 찬미를
빛 밝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나이다.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바람 형님과 공기와 구름과 맑게 개인 날씨와
당신의 피조물 모두를 기르는 사시사철 안에서.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쓰임 많고 겸손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불 형님에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히시나니
그는 멋지고 익살맞고 힘세고 늠름하도다.

찬미받으소서, 내 주님.
누나요 어미인 땅의 찬미받으소서.
땅은 우리를 기르고 다스리며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을 나게 하도다.

▲ 태양의 찬가를 노래하는 프란치스코.ⓒ김선명

노래란 땅에 몸 붙여 사는 무거운 인간들이 하느님께 올려 드리는 숨결이다. 나는 여기 있지만 나의 숨결, 나의 영, 나의 노래는 하늘 높이 올라가 그분 곁에 노닌다. 처음에 우리는 남의 노래를 듣는다. 그것을 배우려고 자꾸 되풀이하여 듣는다. 하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여러 번 듣고 연습해서 가락을 외울 수 있게 되면 그 노래가 싫어지고 결국 그 노래를 잊어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노래가 내 안에서 흘러나온다. 나의 마음을 담고 나를 담아 흘러나온다. 그것은 나의 노래다.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 노래를 잊어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래를 잊어버리는 시간은 노래가 머리로부터 몸으로 스미는 시간이다. 길을 가는 시간은 몸이 일하는 시간, 나의 노래가 내 안에서 익어 가는 시간이다.

▲ 포레스타로 가는 길.ⓒ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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