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국수집 이야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기"라는 제목의 글은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이셨던 박대성씨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박대성씨, 그날 이후

2007년 5월 어느 날입니다. 스스로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고 싶다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달라고 합니다. 입원하는 날 대성 씨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해서 왔습니다. 함께 병원에 가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거의 스무 날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술로만 버텼다고 합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넉 달을 입원해서 치료를 받다가 퇴원했습니다.

퇴원하면서도 자기는 조금도 술을 끊을 마음이 없다고 했는데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함께 청송교도소 자매상담을 갔을 때 우리 형제들 앞에서 금주와 금연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무기수 형제를 의동생을 삼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에 사시는 분이 민들레국수집에 봉사하러 오셨습니다. 그날 대성씨와 함께 지낸 일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겨왔습니다. 지금의 대성 씨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노숙자라는 이름

미카엘과 같이 민들레국수집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원래 10시까지 동인천역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버스를 놓치고, 지하철을 놓치고,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환승정거장 놓치고 그래서 11시 10분에 도착했다. 미카엘은 '봉사활동에 지각해 보기는 처음이다. 민망하다'며 나를 타박했는데 진짜 할 말 없다.

내가 처음 대성 아저씨를 못 알아보고 성함을 여쭤보자 "노숙자예요" 대답하셨다. 이 열심히 일하고, 깔끔 떨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기 이루 말할 데 없으신 어른이 한 때 인생 밑바닥의 노숙자이자 알콜 중독자였다고 누가 믿을까.

처음에 우리에게 일 제대로 하라고 날카롭게 말씀하시다가도 다시 와서 미안하다는 듯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정작 나와 미카엘은 아무 상처 안 받았음) 그걸 몇 번 반복하는 대성아저씨 때문에 내가 웃었다. 말은 날카롭게 하셔도 사실은 마음이 참 여리고 정이 많으신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첫 대면 치곤 대성 아저씨랑 많이 친해졌다. 나는 대성 아저씨가 정말 너무 존경스러웠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그 밑바닥에서, 상황이나 육체 뿐 아니라 의지, 희망, 미래, 건강, 정신이 완전히 박살났던 그 밑바닥에서 우뚝 일어나서 이렇게 자활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쉼없이 일하시고, 따뜻한 정을 남에게 베푸는 모습이.

안 받아 본 사람은 베풀 줄 모른다고 한다. 대성 아저씨도 민들레국수집에서 받아본 게 전부인데, 그게 얼마나 큰 것이었길래 대성 아저씨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을까.

사진출처/복지뉴스

어두워지면 꾸벅꾸벅 졸다가

대성 씨는 오랜 노숙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습성인지 저녁 해가 지면 꾸벅꾸벅 졸다가 곧 잠이 듭니다. 새벽 두 세 시면 일어납니다. 동인천역 주변을 산책하면서 우리 손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담배도 나눠주고 그렇게 다니다가 다섯 시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아침 준비를 해 놓고, 강아지도 돌보고, 주변 청소도 합니다. 그리고 온종일 손님들 대접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다가 어두워지면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듭니다.

술 때문에 입원해 있는 민들레 식구들을 면회하러 대성 씨와 함께 병원을 갔습니다. 대성 씨를 알아본 간호사들이 박수를 칩니다. 지금껏 대성 씨가 술을 마시지 않고 참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합니다.
대성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세상이 환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술 마시고 살 때는 온통 회색빛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신기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돈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겠다고 합니다. 돈도 방세 낼 정도만 벌면 되니까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일하고 나머지는 민들레국수집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돈을 아껴서 무기수 의동생이 출소하는 날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대성 씨가 참으로 너그러워졌습니다. 전에는 민들레국수집의 자원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하다가 바닥에 물을 조금만 흘려도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마음 여린 자원 봉사자들이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하다가 바닥을 한강처럼 만들어 놓아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걸레로 닦아 놓습니다. 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잘 삐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삐지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종이상자나 빈 병이 생기면 모아두었다가 동네 할머니들께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할머니들께 나눠주지 않고 지하 창고에 모아둡니다. 어느 날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실어서 고물상에 팔았습니다. 6만 5천 원이나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왜 갑자기 돈 욕심이 생겼나 했는데 청송교도소 면회를 함께 갔다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형제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2008년 어느 여름날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두 사람을 위해 동네에 방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에게 안성맞춤인 집을 하나 구했습니다. 조그만 독채입니다. 방 하나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대성 씨와 상의했습니다. 지금 대성 씨가 살고 있는 집은 방이 두 칸이 있으니 대성 씨가 이곳으로 이사하고, 살던 곳은 도움이 필요한 두 사람이 지내게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합니다.

대성 씨 이름으로 월세 계약을 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오만 원입니다. 대성 씨가 보증금 오십만 원을 보탰습니다. 술과 담배를 안 하니까 돈이 모였다고 합니다. 계약서를 대성 씨에게 드리면서 보증금도 이제는 대성 씨 것이라고 했습니다. 월세도 대성 씨가 내야하고 전기료며 수도료도 대성 씨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자립이라면서 참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대성 씨가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대성 씨가 기초생활수급권자로 계속 있으려면 자활근로를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민들레국수집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자활근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격상실이 된다고 합니다. 대성 씨는 자격상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올 2월부터는 대성 씨가 민들레국수집의 무급직원으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직원은 급료도 없습니다. 퇴직금도 없습니다. 4대 보험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직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인 선호 씨와 성욱 씨도 무급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대성 씨가 팀장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팀장인 대성 씨가 오늘 손님들 후식으로는 사과를 내는데 때깔이 안 좋은 것은 우리가 먹고 곱고 예쁜 사과는 손님들께 후식으로 내자고 제안을 합니다. 참 마음이 예쁩니다. 빈 가슴에 사랑이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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