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천의료원, '제2의 진주의료원' 되나

▲ 10월 28일 오전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진행된 인천의료원의 '마중나가기' 공공의료사업 현장

10월 28일 오전 동인천역 북광장은 한층 차가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동구 지역의 서민들과 노숙인들로 적잖게 북적였다. 인천의료원이 공공의료사업으로 지역주민과 노숙인 “마중나가기” 진료를 진행하는 임시 진료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난 1년 동안 병원을 찾지 못하는 어려운 인천의 서민들과 노숙인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마중나가기” 행사에는 이날 하루 만도 250여 명의 주민들이 찾아와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았다. 이날 인천의료원의 “마중나가기” 공공의료사업에는 동구자원봉사회, 내일을여는집과 같은 봉사사회단체를 건강보험공단과 동인천역 근무 공무원들까지 함께 협조를 이루어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된 서민들과 노숙인의 의료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중나가기” 사업도 내년도에 인천의료원의 예산이 전반적으로 삭감되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병원 운영비와 시설비조차 삭감되는 마당에 많은 수고와 공력이 들어가는 “마중나가기” 사업 같은 서민의료복지사업은 가장 먼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중나가기” 사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6일, 인천공항에서 한 아프리카 승객이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돼 국가지정 격리병원 병상이 갖춰져 있는 인천의료원으로 긴급 후송된 적이 있었다. 아직 병리생태조차 파악이 안 되고 백신과 치료약도 없어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인천에서 유일하게 격리 치료하도록 지정된 병원이 인천의료원이다.

에볼라 환자를 돌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파견됐던 의사들이 감염돼 숨져 가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 의사와 간호사들에게도 공포 대상인 에볼라 감염 의심환자를 맞아 당시 인천의료원 의료진들은 피를 뽑고 수액을 주사하는 가장 두려운 일을 서로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다행히 그 환자가 에볼라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만약 그 환자가 진성 환자였다면 인천의료원의 모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내보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국가와 인천시는 인천의료원을 재난적인 질병에 대비하는 국가지정 격리병원으로만 지정했지 아무런 대책과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방의료원이 가지고 있는 공공적 기능이 수익성과 경영논리에 의해 거세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 갈림길에 놓인 지방의료원

지난 10월 6일 성남시청에서는 ‘공공의료 일번지 성남시의료원 발전방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11월 첫 삽을 뜬 성남시의료원의 바람직한 운영방향과 발전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추진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성남시청 관계자, 그리고 관심 있는 시민과 기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발표를 한 이평수 연구위원(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은 지역주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건의료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의료원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공공의료체계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방의료원의 역할 수행의 저해 요인들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경영의 지속성과 일관성 유지, 양질의 적정의료 강화 및 제공, 적정의료 제공을 위한 기반구축, 환자안전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이덕수 공동대표는 치료하는 병원을 넘어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의료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시립의료원 조례를 재검토해 야하며, “시민위원회-시민옴부즈맨-시민자원봉사단-시민건강기금” 등으로 이어지는 시민참여 구조를 구축하고, 이러한 기구들이 상설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구 100만이 되지 않은 성남 시민사회가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성남시의료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의료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색하는 자리는 인천시의료원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비단 성남시뿐만 아니라 대전광역시도 지방의료원의 설립 필요성을 인식하고 의료원 설립을 추진중에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잘 운영되던 지방의료원의 공공적 기능 대신 경영성과와 수익성을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해 공공의료원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난해 폐업한 경남의 진주의료원에 이어 올해 또다시 폐업 위기에 내몰린 속초의료원이다.

속초의료원은 환자가 빠르게 늘고 경영수지가 좋아지고 있는데도, 의료원 쪽이 적자를 이유로 노동조합과 교섭을 거부했다. 속초의료원은 노조가 의료 공공성 보장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대다수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등 휴업을 무기로 노조를 압박해 현재까지 의료원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 추경에서 삭감된 인천의료원 예산들

인천 공공의료의 보루, 인천의료원 지키자 움직임 일어

임금체불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파업중인 속초의료원 외에도 임금체불이나 민간병원에 견줘 낮은 급여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지방의료원은 많다. 강원도 5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원주를 뺀 나머지 네 곳은 모두 임금체불로 노사 갈등을 빚고 있다. 의료원 노사가 이처럼 갈등을 빚게 된 것은 지방정부가 수익성과 경영성과를 근거로 지방의료원에 대한 예산지원을 줄이거나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진주의료원과 속초의료원의 사례가 결코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인천의료원에도 다가오고 있다. 경제부시장으로 임용된 배국환 부시장은 연일 인천시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공사공단의 경영성과를 평가하겠다며, 의료원의 공공성은 돌보지 않고 수익성만 평가하는 '홍준표'식 행정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유숙경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지역 본부장은 “관련기관과 단체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의 재정위기를 이유로 예산부터 삭감하는 인천시에 항의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무엇보다 먼저 인천시의 공공의료 예산삭감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할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며 “아시안게임 개최 등 대규모 이벤트와 개발사업으로 재정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인천시가 복지정책에 대한 마인드도 없이 공공의료 예산에 대해 무조건적인 삭감을 들이대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나가겠다.”고 밝혔다. 공공 의료예산 삭감 방침이 알려지자 오는 29일 시청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인천의료원은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기관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라며 “서민들이 매우 좋아했던 ‘보호자없는병실’ 같은 좋은 사업도 실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차별적으로 삭감하는 것은 인천시의 공공의료와 의료복지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한 것으로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남촌가정의원’ 원장이자 ‘건강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상임대표인 김정범 의사도 “인천의료원은 전국적으로 역사도 오래된 의료원이고 지역에서 서민의료기관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규모도 크고 모범적인 역할을 한 인천의료원이 인천시의 재정위기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서민들을 위한 필수 의료기관으로서 인천의료원을 살리는 데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건강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차원에서도 인천시의 예산 삭감에 대비해 대응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전국의 지방의료원 현황 (출처=한겨레신문)

300만 도시 인천, 불행한 서민들의 도시가 될 것인가

보름간의 인천아시안게임, 축제는 끝났다. 아시안게임이 가져온 축제의 후유증은 엄청난 재정위기로 인천시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인천시는 송도국제도시 하늘에다 수억 원의 돈을 들여 불꽃놀이 축제를 거듭하면서, 인천 서민들의 위한 공공의료 예산은 가차 없이 삭감하고 있다.

인천시의 재정위기를 불러온 사람들은 누구인데, 재정위기의 일차적 피해를 서민들의 목숨줄을 지켜 주는 공공의료 예산에 가위질부터 해 대나? 이것이 과연 유정복 시장이 내건 새로운 시정구호인 “새로운 인천, 행복한 시민”을 위한 길인가에 대해 유 시장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기사 제휴 / 인천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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