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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란치스코, 당신이 바로 꽃씨[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14]
황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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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8  1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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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티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만년에 프란치스코는 눈병 치료를 위해 리에티에 머문 적이 있다. 몸을 도무지 돌보려고 하지 않는 그를 총 봉사자 엘리야가 강권하여 용한 의사가 있는 리에티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리에티 근처의 은둔소에 머물면서 눈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은둔소는 아마 폰테 콜롬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폰테 콜롬보에는 프란치스코가 눈병을 치료한 장소가 보존되어 있다. 그렇다면 성인도 우리가 지금 내려가는 이 길을 다녔으리라. 눈이 거의 멀다시피 한 성인이 나귀에 의지하여 다녔을 길을 우리도 따라간다. 고요하지만 생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 리에티 표지판(왼쪽), 리에티로 가는 산길.ⓒ김선명

그는 사방으로 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간절하고 헌신적이며 열성적인 정신으로 어디에서나 하느님 말씀의 씨를 뿌렸다. 그는 온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채웠고 그러기 위해서 보통 하루에 네댓 동네와 마을을 두루 다니며 누구에게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는 말보다도 표양으로 듣는 이들을 감화시켰고 온몸이 혀로 변하여 말을 하였다. (제 1생애, 97)

프란치스코의 전기 작가 첼라노의 토마스는 여행자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움브리아 지방을 다녀 보면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마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 방학 때 친구의 고향인 파노에 간 적 있는데 해수욕장에서 만난 이웃들이 “평화와 선!”하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 왜 저런 인사를?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곳도 프란치스코가 늘 돌아다니며 평화를 선포하던 땅이었다.

   
▲ 매운 소시지 점심.ⓒ김선명

프란치스코는 한곳에 머물며 살던 중세의 수도승들과 달리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탁발 수도사였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호의에 의지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작은 형제다. ‘탁발 수도사’라 하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 ‘거지 수도사’가 아닌가. 내가 아는 프란치스코회 수사님 말로는 요즘도 프란치스칸들은 ‘탁발’의 체험을 한다는데 정해진 장소까지 돈 없이 여행하도록 하는 그런 체험인 모양이다. 그 수사님도 별수 없이 지하철역에서 여비를 청해야 했는데 그때 돈을 주던 어느 중학생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렇게 살지 마세요” 했다던가.

산길이 끝나고 리에티로 이어진 도로를 만났다. 점심때가 되어 근처 가게에서 빵 몇 개와 매운 소시지를 샀다. 계속 싱거운 여기 음식들만 먹다 보면 뱃속에서 좀 매운 걸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게 우리네 식성이다. 마침 고추를 넣어서 만든 빨간 소시지가 있어 그걸 샀다. 3유로어치 고추 소시지와 4유로어치 빵, 아스팔트 길을 지중해의 쨍쨍한 햇살 맞으며 걸으려면 미리 방비를 좀 해 두어야 한다.

“...영혼들의 구원을 간절히 바란 그는 이웃의 영신적 성장을 갈망한 나머지 걸을 수 없을 때는 나귀를 타고 두루 돌아다녔다.”(제 1생애, 98)

   
▲ 리에티까지 가는 길.ⓒ김선명
프란치스코가 부지런히 길을 나섰던 것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길에 순명하면 길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 프란치스코에게 그 길은 십자가에서 그를 부르시고 나환자와 같은 가난한 이들에게 그를 보내신 예수님의 길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 앞에 놓인 길을 걸어 그 길에 자신을 포개었고 그렇게 그 자신도 길이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온몸이 혀로 변하여 말을 하”며 걷던 길을 우리도 걷고 있다. 햇살은 따갑고 길은 멀고.... “길은 길어서 길이구나” 푸념을 하는데 해바라기밭이 나타난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따가운 햇살, 함께 걷는 나무 수사님의 추적추적 발소리.... 7월의 햇살 아래 작은 씨앗들을 익혀 가는 해바라기들 얼굴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 얼굴 같다는 생각이 얼핏 떠오른다.

   
▲ 리에티 근교의 해바라기밭.ⓒ김선명

꽃들이 비를 맞으며 이야기한다
어디로 가고 싶어도 뿌리가 있어 못 간다고 한다
비 그친 뒤 날아 오른 벌이 말한다
너도 꽃씨가 되어 날아간다고
날아간다고...

하덕규가 곡을 붙인 정재완 시인의 노래를 부르며 해바라기들 곁을 지나간다. 나도 언젠가 꽃씨가 되어 날아간다고, 날아간다고.... 예수님처럼, 그리고 프란치스코처럼.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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