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해방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건과의 연계성일 것이다.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극심한 이농현상을 경험한다. 많은 농촌인구가 대도시로의 유입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대도시 내에 대규모 빈민촌이 급격히 형성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역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의 현장에서 그들은 많은 질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성서적 그리고 신학적 성찰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해방신학이 태동하게 되는 상황이 형성된다. 해방신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삶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성찰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문제를 가슴에 품고 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해방신학은 역사의 현장과 그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해방신학이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Colombia, Medellin)에서 개최되었던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 II)에서 발표된 문서와 1971년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의 저서, '해방신학'의 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해방신학의 역사는 그의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훨씬 이전의 역사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오늘의 해방신학 이야기를 해방신학의 태동을 전제로 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언급할 것이다.

해방신학을 낳은 두 가지 사건

첫 번째는 1511년 12월 21일 도미니코회 안토니오 몬테시노(Antonio Montesino) 신부의 강론이다. 안토니오 신부는 신대륙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인디오들의 고통과 아픔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들을 위한 선교 사역을 펼쳐나가게 된다. 안토니오 신부를 비롯한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신부들은 신대륙에서 벌어지는 인디오들에 대한 학살과 착취 현장을 목격하고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사역을 펼치게 된다.

그는 1511년 12월 21일 대림절 제4 주간의 강론에서 요한복음 1장 23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라고 규정하면서 강론을 시작한다. "여러분들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죄악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죄 없고 순진한 사람들에게 행한 폭행과 잔악한 행위로 말미암은 죄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죄로 인하여 죽고 말 것입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권리와 정의로 순진한 인디오들을 노예로 삼고 잔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무슨 권한으로 평화롭고 순전하게 자신들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이들을 향하여 전쟁을 하고 그들의 무고한 목숨을 빼앗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이 일을 계속한다면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안토니오 몬테시노 신부의 강론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74-1566)를 감동하게 만들었고 그 후 그는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오’라고 부르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행한 학살과 참상을 고발하고 ‘그들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 있는 인간’임을 선포한 예언자로 살아갔다. 해방신학은 이러한 안토니오 몬테시노 신부와 라스 카사스 주교가 선택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다시 선택했던 신학적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

▲ 화형당하는 아투에이 추장.(사진 출처=de.wikipedia.org)
두 번째는 아투에이(Hatuey) 추장 사건이다. 아투에이는 에스파뇰라 섬(지금의 도미니카공화국)의 타이노(Taino) 부족의 추장이었다. 그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섬에 쳐들어오자 부족 사람들을 결집시켜 용맹스러운 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잘 훈련된 스페인 군인들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의 부족은 전멸하게 되고 그는 수백 명의 남은 타이노 부족 사람들과 함께 쿠바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스페인 정복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1512년 2월 2일 결국 그는 사로잡혀 화형을 당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 그는 스페인 가톨릭의 종군 신부로부터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천국으로 갈 것”을 제의 받는다. 잠시 생각한 후에 그는 신부에게 되묻는다. “여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는 나의 가족을 겁탈하고 그리고 나의 온 재산을 빼앗고 가축들을 탈취해 간 이 군인들도 천국을 가는가?” 신부는“당연히 이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 천국에 간다.”라고 답변한다.

아투에이는 즉시 “그렇다면 나는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이들이 없는 지옥이 바로 천국이다.”라는 말과 함께 산 채로 화형을 당한다.

많은 해방신학자들은 아투에이의 사건을 해방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Luis Rivera Pagán, "A violent evangelism: the political and religious conquest of the Americas",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2.) 이 같은 아투에이의 천국과 구원에 대한 이해를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첫 번째 신학적 해석행위라고 간주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아투에이와 같이 거대한 권력과 힘 앞에 쓰러져가면서도 당당하게 저항의 정신을 놓치지 않고 살아갔던 억눌리고 가난하고 착취당하던 민중들의 의식과 행위[praxis]를 오늘의 상황에서 되살린 신학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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