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상봉


돌아오는 이보다
떠나는 이 더 많은

역으로 가는 길이 숨차다

가던 길에 짓밟히고
오던 길에 짓밟혀 신음을 깨물고도
아프다는 한 마디 없이
텅 빈 길 홀로 늙어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기다림 하나로 일생을 바친

세상의 모든 역은 어머니를 닮았다

-박영희, <추전역에서


*추전역 /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역


작년에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무릎에 인공관절을 박는 수술이었다. 남들은 90도라도 다리가 꺾였을 때 오는데 자신은 65도 밖에 안 구부러질 때 왔다는 것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보았다. 하루는 갔더니 의사가 억지로 다리를 부러뜨릴 듯 구부렸다고, 너무 아팠다고 서럽게 우셨다. 어린아이가 되어.

이 분이 나의 어머니셨다. 네 자식을 모두 업어 키우고, 뻘밭 같던 삶 속에서 허우적이며 우리 모두를 건사해 주셨던 어머니셨다.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세상에 놓아주고, 늘 그리워했을 어머니. 늙어, 어린아이처럼 우시지만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 하늘이다. 구름이다. 바람이다.

하루는 그런 어머니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어머니 곁에서 조금 더 있다 가겠다고, 조금만 더 있다 가겠다고 떼를 썼지만, 빨리 너 자식들 있는 곳으로, 너의 아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하셨다. 갈라진 손 끝, 부르튼 발바닥, 축 늘어진 거죽들, ‘세상의 모든’ 높은 것들은 그렇게 말없이 낡아가고 삭아가며, 조용히 소멸해 간다. 희생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만이 높아갈수록 더 오만해지고, 더 뻔뻔해지고, 더 반지름해져 간다.

‘추전역’ 외로운 언덕빼기에서 홀로 늙어가는 역. 돌아보라. 그런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곳에서 세상의 어머니들이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박영희 / 1985년 『민의』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조카의 하늘』, 『해 뜨는 검은 땅』, 『팽이는 서고 싶다』 등이 있다. 르뽀집으로 『길에서 만난 세상』,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등을 펴냈다.

송경동 / 시인.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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