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위, 신자유주의와 교회대응 토론

“시장의 독재라는 말은 맞지만, 시장은 너무 미화되고 객관적 표현이다. 실제로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자본이다.”

2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신자유주의에 관해 연 세미나에서 가톨릭대학의 조돈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 조돈문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 ⓒ배선영 기자
조 교수는 ‘삼성의 사회적 지배’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실제로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자본이며 자본의 핵심은 삼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국가가 시장을 바로잡고 자본을 규제해야 하는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정평위는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새로운 독재와 국가: 신자유주의와 교회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4년 정기세미나를 열었다.

조돈문 교수는 국가가 삼성에 대한 규제를 포기한 것은 시민들이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 ‘불법비리는 삼성의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다’ 등 삼성에 대해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삼성과 국가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권력을 자본에게 넘겨줄 때 시민들은 무엇을 했는지 물으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이동화 신부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에 맞서 주교회의 차원에서부터 각 본당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목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영국과 미국, 독일의 주교회의에서 신자유주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교회의 응답을 정리한 지역교회 문헌을 소개했다. 미국 주교회의의 ‘모든 이를 위한 경제정의’, 잉글랜드 웨일즈 주교회의의 '공동선: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독일 주교회의의 ‘연대와 정의에 기반을 둔 미래를 위하여’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복지 정책이 후퇴하고,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 가운데 영국 교회의 ‘공동선’을 1997년에 번역, 발간한 바 있다.

이 신부는 한국 주교회의에서 2013년에 발표한 문헌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이 좋은 시도라며 그러나 이 문헌이 본당과 신학교, 수도원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없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독재’라는 말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교황의 개인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이미 신자유주의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천명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교회는 이미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국가가 공동선의 원리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며, 교회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해야 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세미나에는 조 교수와 이 신부 외에도 김종철 편집인(녹색평론),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밀양 765kV 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 황상기 씨(삼성반도체 희생자 고 황유미 부친), 이종란 노무사(반올림)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을 대신해 삼성과 협상하고 있는 조직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새로운 독재 앞의 권리’라는 주제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부터 최근까지의 언론기사를 통해 헌법상 기본권 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앞서 20일에는 권 변호사가 대한문 앞 집회와 관련해 기소된 첫 공판이 열렸고, 이 자리에는 38명의 변호사가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언론에는 85명의 동료 변호사들이 재판부에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권 변호사는 이에 대해 “85명이 아니라 100명이 넘는 변호사가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동지애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위기감 때문이며, 헌법상의 기본권이 어떤 식으로 대접을 받는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계삼 사무국장과 황상기 씨도, 새로운 독재 앞에서 각각 밀양 송전탑을 두고 10년간 주민들의 싸움과 삼성반도체 산업재해의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