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18]

아이들과 산에 다녀오는 길, 여기저기서 두들겨 패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콩이며 팥, 들깨 따위를 타작하느라 한창 바쁜 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비 오기 전에 부지런히 털어 낼 생각으로 마을 할머니들은 저마다 콩대 더미, 팥대 더미 앞에서 돌부처가 되고야 말았다.

하루 종일 두들겨 패시려면 얼마나 어깨가 아프실꼬. 하얀 먼지를 머리에 이고 쉼 없이 두들기는 고행을 하는 할머니들 앞을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해서 나는 다울이에게 “할머니, 힘내세요!”하고 소리치라고 시켰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일이라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다울이가 과연 큰 소리로 할머니들을 응원하자 다랑이도 웅얼웅얼 형님 말을 따라 한다.

“할머니 힘내세요!”
“어우우우요!”

아이들 목소리에 할머니들은 굳은 얼굴을 펴고 모처럼 환히 웃으신다. 나 또한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시안(겨울)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푹 쉬세요!”라고 소리치며 할머니들께 힘을 실어 드렸다.

그렇게 기쁨조가 되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우리 집 나 홀로 일꾼 다울이 아빠가 오늘도 멀티플레이를 연출 중이다. 나락 훑은 걸 풍구질로 날리다가, 콩을 털다가, 밭에 널어놓은 들깨를 지게로 져 나르다가.... 하여간 혼자서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일을 거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거들 수 있는 능력도 안 되는 걸 너무도 잘 아는지라, 혼자서 다 하는 걸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그는 해가 갈수록 새로운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하는지 잔머리도 굵어지고, 해도 해도 모르겠다던 키질(키로 까불어서 알곡을 추리는 일)을 꽤 능숙한 솜씨로 해 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를 통해 나는 ‘역시 꾸준히 하면 할 수 있게 되는구나!’하고 느끼고는 있는데, 과연 언제나 키를 손에 잡고 묘기대행진을 할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다. 아직 내 눈에는 키질이 묘기로만 보이고 키질하는 사람은 대단히 놀라운 재주를 부리는 사람으로 보이기만 하니 말이다.

▲ 다울이 아빠가 들깨를 키로 까불고 있다. 진한 들깨 향기가 가을 바람을 타고 실려온다.ⓒ정청라

‘키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키질’ 하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처음 귀농해서 합천에 살 때 한 마을에 살던 새터 할머니! 새터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였는데, 나와 친하게 지내던 설매실 할머니 집에 자주 오셨다. 인정이 많은 설매실 할머니가 새터 할머니를 불러다 먹을 것도 챙겨 드리고, 알뜰살뜰 보살펴 주셨기 때문이다.

설매실 할머니는 농사 초보인 나를 친딸처럼 돌봐 주시기도 했는데, 내가 어설픈 몸짓으로 일 같지도 않게 일을 할 때마다 새터 할머니를 투입시켜 내 일을 거들어 주게 하셨다. 덕분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또렷한 기억이 몇 개 남아 있다.

먼저, 보리 베던 때! 보리를 벤다고 내 무릎을 벨 것처럼 낫질을 하고 있을 때 설매실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새터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그러더니 마술 같은 솜씨로 낫질이란 무언인가를 몸소 보여 주셨다. 어째서 같은 낫을 들고서도 내가 낫질을 하면 ‘써어어억!’ 하는 답답한 소리가 나고 새터 할머니가 낫질을 하면 ‘썩!’하는 속 시원한 소리가 나는지 원. 힘 하나 안 들이고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바람처럼 손놀림이 빨라서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키질도 그렇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쭉정이와 검불을 까불어서 날리고 알곡만 추려 내셨다. 할머니가 키를 살짝 들어 올리며 바람을 일으키면 콩알들이 공중제비를 하고 내려와 키에 부딪히며 ‘차르륵 차르륵’하는 경쾌하고 단정한 소리를 냈었지. 아직도 그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살랑이는 부채질처럼 아기를 어르는 구름 침대처럼, 할머니 키질은 참 보드랍고 신비로웠는데....

그뿐인가. 설매실 할머니 집에서 토란탕 끓여 먹는다고 모였을 때 믹서기가 고장 나서 들깨를 절구에 갈아야 했는데 그때도 새터 할머니의 활약은 눈부셨다. 능숙한 솜씨로 방망이를 들들 돌려서 들깨를 갈았는데 내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손놀림이었다. 믹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들깨를 곱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나는 귀신에 홀린 듯 할머니 손놀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지.

그런데 그렇게 몸으로 많은 것을 보여 주신 새터 할머니가 자식들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입원하시고는 몇 달 안 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설매실 할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요양원이라카는 데가 감옥 아이가. 갔다 하믄 죽어서 나오는 기라.”

설매실 할머니와 나는 그렇게 씁쓸한 심정으로 새터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새터 할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잘 알고 있기에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얼른 죽어서 다행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울이 아빠가 들깨를 키질로 까부는 것을 보는 내내 새터 할머니 손놀림과 몸짓,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키질 하는 사람을 보면 새터 할머니가 그리울 것 같다.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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