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고용주들, 고용허가제 악용"

한국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가 심각하며,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18일 발표됐다.

대표적인 국제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보고서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를 공개하고 한국 각지에서 진행된 이주노동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협박과 폭력, 비위생적 숙소, 너무 긴 노동시간 등의 착취행태를 밝혔다.

이 가운데 한 증언에 따르면, 한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는 채소농장에서 날마다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18시간을 일하면서 점심시간 1시간만 쉬었고, 화장실도 없어서 땅에 구멍을 파 일을 봐야 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5만 명 정도이며, 그 중 약 2만 명이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업은 법적 보호장치가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여서 이주노동자들이 착취와 인권침해를 당할 위험이 더 크다.

예수회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김포)의 김정대 지도신부는 21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농촌은 해 뜨면서 일하고 해지면 일이 끝나곤 해서 잔업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쉬는 날도 없다. 농촌 이주노동자가 일요일에는 한글도 배우고 한국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센터에 나오지 못한다. 인권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주노동자가 인권침해에 취약한 이유로 사용자에게 유리한 ‘고용허가제’를 꼽았다.

▲ '익산 노동자의 집'에 모여 있는 이주노동자.(사진 제공=익산노동자의 집)
고용허가제법 제 25조 제1항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면 반드시 사업장변경신청서에 현 고용주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주는 사업장변경신청서에 서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1000-2000 달러 정도의 뇌물을 받고 서명을 해 준 경우도 있다.

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노마 강 무이코(Norma Kang Muico) 이주인권조사관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비양심적인 고용주가 이 점을 악용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미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로서는 인권침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그 고용주와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 대다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 등에서 왔으며 대부분은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국에서 2년 연봉과 맞먹는 금액의 빚을 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국제노동기구와 기타 유엔 기구들이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장해 인권침해와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한국에 반복해 요구했으나 한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는 노동자들이 고용주로부터 사업장변경신청서에 서명을 받지 않고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근로시간, 일일 휴게시간, 유급 주휴일에 대한 권리 등이 이주노동자에게도 확대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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