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교시노드의 모습들

교황청의 공식 매체인 <바티칸 라디오>는 10월 15일 지금 바티칸에서 진행 중인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의 일일 브리핑 소식을 전했다.

이 보도에서 필리파 히첸 기자는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 아침 시노드 회의장에서 내가 얘기를 나눈 몇몇 주교들은 (월요일에 발표된) 중간 보고서에서 제기된 가정 생활과 관계에 관한 아주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합의하려고 ‘분투’(battle)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청 공보실이 하는) 기자회견에 나온 세 사람은 언어별로 10개로 나뉜 소그룹에 가득 찬 ‘일치, 형제애, 그리고 사목적 관심’의 정신을 열심히 강조했다.”

▲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모든 결정이 이뤄진 뒤 잘 정리된 것만 보도하는 교회 언론의 모습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처럼 교회가 화장하기 전의 생생한 속살을 보여 주는 것이 낯설 수도 있다. 그것도 <바티칸 라디오>다.

지난 10월 5일에 시작된 시노드는 1주일의 토론을 마치고 13일에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동성애자에 대한 언급이 폭풍 같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서양 언론에서는 “지진”, “혁명”이라는 표현이 튀어 나왔다.

보수파들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보고서에 강력히 저항했다. 시노드 전부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혀 오던 미국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이 보고서의 내용이 “성경에 별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앙에 대한) “배반”이라는 표현을 쓰는 주교들도 있었다. 버크 추기경은 교황청 대심원장을 맡고 있다.

압권은 남아프리카의 윌프리드 네이피어 추기경이었다. 그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 보고서가 "이것이 시노드가 말하고 있는 것이고 가톨릭교회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내보냈지만 실제 그 내용은 "우리가 (시노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실제 대의원들이 하지 않은 내용을 한 것처럼 왜곡해서 발표했다는 뜻이다. 그는 "보고서는 이미 나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사태수습 수준"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필리핀의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이 보고서가 "(대의원들의 의견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했다(mirror)"라고 말한 바 있었다. 타글레 추기경은 대체로 진보적이지만 그 명민함과 온화함으로써 보수적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총애를 받아 젊은 나이임에도 여러 중요 교회 회합에서 초안 작성 등 중요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결국 파장이 커지자 네이피어 추기경은 그 뒤 물러섰다. "보고서에는 아주 좋은, 아주 좋은 내용들이 많다.... 많은 부분은 실제 시노드에서 나온 발언들이었다.... 내가 한 발언은 내가 속한 소그룹의 의견들을 반영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시노드의 전체 메시지인 것처럼 보도해서 사람들이 화가 났던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교황청 공보실은 14일 이 중간 보고서는 최종 문서가 아니며 남은 1주간의 토론을 위한 “작업 문서”(working document)라고 지적하며 지나친 해석과 논란을 경계했다. 실제 이 문서는 결론 부분에서 이 문서가 “(토의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고, 더 다듬고 더 명확히 성찰해야 할 관점들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시노드는 오는 19일에 끝난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또 일각의 오해처럼 가톨릭교회가 혼전 동거나 동성애자들의 동성 결합(결혼)을 인정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

하지만 이 문서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가톨릭교회의 고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성애자 등에 대해 “은사”, “기여” 등과 같은 긍정적 표현을 하는 언어를 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이것만으로도 크게 고무됐다. 동성 결합 인정 등 동성애 문제가 중요 정치 사안이기도 한 미국에서는 이것은 단순히 가톨릭교회 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톨릭교회는 근본주의 개신교와 함께 동성애를 반대하는 양대 세력이며, 버크 추기경은 교회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보수적 의견을 과감히 밝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15일 기자회견에는 미국 주교회의 의장인 조셉 커츠 대주교가 나와 자신이 속한 소그룹이 중점을 두는 세 가지 요점을 밝혔다. “첫째는 오늘날의 희생하고 사랑하는 가정들이라는 중요한 증거에 주목하는 것, 둘째는 우리의 언어가 환영하는 말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 셋째는 우리가 하는 사목적 노력이 성경과 교회 가르침의 아름다움 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츠 대주교의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시노드를 앞두고 한 말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며, 이러한 추상적 표현에서는 중도적 느낌마저 묻어난다.

▲ 양과 함께 있는 가족. 라파엘(1507)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그 자녀인 예수로 이뤄진 '성가정'(Holy Family)을 모델로 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정관에서는 이에 어긋난 동성 결합이나 비혼 부부(미혼모), 이혼 등을 "죄"나 장애로 보고  동정은 하되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계를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에도 가톨릭 교회의 가정관이 추구하는 가치인 가족 간의 희생과 사랑의 모습이 일부 있다면 그만큼 인정하려는 "자비"로의 관점의 전환이 이번 시노드의 포인트다.

한편 교황청 새복음화평의회 의장인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는 자신이 속한 이탈리아어 소그룹은 (이혼을 위한) 혼인무효 소송절차가 무료이어야 하며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회가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회에서의 혼인무효는 교회 법원을 통한 소송을 거쳐야 하므로 서류 준비와 변호인 등의 비용이 필요한데 한국 교회에서는 대략 15만 원 정도다. 혼인무효 절차의 간소화는 이번 시노드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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