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주민 "진정성 의심, 조사 형식적" vs 원 지사 "위원장 맡겠다, 결과 따라 공무원 징계“

▲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 제주의소리

원희룡 지사가 해군기지 갈등 해소에 그동안 제주도정이 손을 놓고 있었다고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지난 8년 동안 찢기고 갈라진 강정주민들의 깊은 응어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원 지사가 제안한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대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사과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15일 오후 7시 30분 강정의례회관에서 열린 원희룡 지사와 강정마을 주민의 첫 만남은 자정 무렵인 밤 11시 42분까지 무려 4시간 10분 동안 이어졌다. 그만큼 원망도 컸고 할 말도 많았다.

원 지사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해군기지 갈등 해결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전임 김태환·우근민 지사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갖고 있는 강정주민들은 원 지사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았다.

원 지사는 이날 인사말에서 "8년 가까이 겪어 오신 아픔에 대해 그리고 강정마을이 겪고 있는 공동체가 찢어지는 그 기막힌 상황에 대해서 제주도정이 책임 있게 현재까지 (갈등을) 풀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 모든 걸 떠나서 도정 책임자로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이 "제주도 차원의 진상조사는 한계점이 분명한 만큼 4.3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관련 위원회 설치를 요청해 주길 기대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원 지사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중앙정부가 이 의견을 받아들여서 국회에 발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해군의 입장을 정부 스스로 정면 부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제주도지사의 (권한)범위를 넘어간 것인데, 이 안에 대해 (정부에) 건의하거나 요구를 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며 "다만 제주도 차원에서 조례로 근거 규정을 만들어서 전폭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간담회장인 강정의례회관에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제주의소리

최근 구성지 도의회 의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강정 진상조사 무용론' 주장을 편 것에 대한 비판과, 박영부 기획조정실장을 원 지사가 발탁한 것을 두고도 과연 도지사가 강정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강한 지적도 나왔다.

또한 주민들은 해군기지 입지선정 과정에서부터 농로매각, 토지강제수용, 절대보전지역 해제,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짜 맞추기 강정발전계획, 15만 톤 크루즈 2척 동시 입출항 시뮬레이션, 공사 설계변경 등 지난 8년여 동안 제기된 숱한 문제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 냈다.

그동안 기만당하기만...."원 지사, 확실한 답을 하라"

특히 주민들은 진상조사위원회가 과연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진상조사위의 '한계'와 '진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주민 홍동표 씨는 "지사께서 얘기하는 뉘앙스를 보면 해군기지는 막을 수 없고, 해군기지 공사가 다 진행된 것 같다"며 "허울 좋은 진상조사 하나 놓고 강정주민 마음을 풀어 보겠다는 것인데 그동안 너무 기만당하고 속아 왔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씨는 "진상조사가 요식 행위로 끝나면 원희룡 지사도 전임 김태환·우근민 도정처럼 똑같은 도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강정주민과 대화하고 진정성을 보여줘서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어 윤상효 씨도 "박영부 씨를 기획실장으로 승진 발령한 데 대해 정말로 원 지사가 진상조사를 진정으로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또 진상조사가 된다면 부정행위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을 처벌할 수 있는지 확실한 답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원 지사는 "당시 관여됐던 사람들은 진상조사 업무에서 철저히 배제할 것"이라며 "책임져야 할 부분이 나온다면 성역 없이 원칙대로 인사권을 행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원 지사는 "진상조사를 세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도지사가 언급하게 되면 또 다른 오해를 사게 되고, 불필요한 시비나 의심을 받게 된다"며 "마을 주민이 모아진 뜻이 중요하고, 진상조사에 대한 세부적 방법이나 시기 등을 마을에서 정하면 행정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 진상조사위원장 맡을 수도

또 원 지사는 마을에서 원하면 자신이 직접 진상조사위원장도 맡을 수 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원 지사는 "도지사가 의지(진정성)를 보여야 한다고 하는데 원칙적으로 지사가 조사위원장을 맡으면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강정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 (마을이) 요구한다면 제가 직접 맡겠다"고 덧붙였다.
 

▲ 강정마을 간담회에서 마을주민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공사 중단 요구에 대해 원 지사는 "현재 진행되는 공사를 중단시킬 권한이 있냐고 물어 봤을 때 저는 권한이 없지 않냐"며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책임은 국방부에 있다"며 '공사 중단'에 대해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마을주민 김성규 씨는 "김태환 전 지사를 강정주민들이 지지했는데 해군기지를 유치하면서 강정을 배신했고, 우근민 지사도 강정을 위한다고 해 놓고 한 번 찾아와서 우롱했을 뿐"이라며 "원희룡 지사도 서귀포시 중문 출신이라고 하지만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원 지사의 고향인 서귀포시 중문동은 강정동과 바로 이웃한 마을이다.

철저한 진상조사가 아니라면 더 깊은 불신 초래할 것

김 씨는 "진상조사를 통해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과 분노, 아픔을 100분의 1이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주민도 있다"며 "하지만 진상조사가 정말 제대로 되지 않으면 더 많은 불신을 강정에 가져올 것"이라고 원 지사에게 경고했다.

원 지사는 "어쩔 수 없는 불신의 골을 저도 인정한다. 원희룡이 뭔데 갑자기 와서 (진상조사) 약속을 하는데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전체적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장장 4시간 10분 동안 이어진 간담회에서 원 지사는 마을주민들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답변했다. 강정주민들은 이날 원 지사와의 첫 만남에서 과연 원 지사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8년 동안 전임 도정에 대한 배신감,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마을 공동체가 찬반으로 나뉘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 온 강정주민들로선 당연한 것이었다.

원 지사가 제안한 해군기지 진상조사 요구를 받을지 말지는 결론 내리지 못했다. 강정마을회는 조만간 운영위원회를 열고 한 번 더 토론회를 개최하느냐, 아니면 마을 임시총회를 통해 진상조사원회 안건을 다루느냐의 최종 입장을 정리할 전망이다.

이번 원 지사와 강정주민들의 첫 간담회가 8년간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해군기지 갈등 해소와 강정주민들의 명예회복의 단초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 제주의소리

<기사 제휴 / 제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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