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목연구소 전원 신부 인터뷰

지난 10월 6일부터 8일까지 대전가톨릭신학교 내 정하상 교육회관에서는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이하 사목연구소)가 주최하는 ‘소공동체 중심의 본당 건설’을 위한 사목 연수가 열렸다.

이 자리를 마련한 사목연구소 부소장 전원 신부(서울대교구)는 “처음으로 본당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목적 논의를 진행했다”며 의미를 뒀다. ‘소공동체’를 두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는 대안”이라고 강조하는 전원 신부. 오랫동안 ‘소공동체’에 천착하며, 아직은 작은 씨앗인 소공동체의 싹을 틔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함에도 평가와 체감의 명암이 분명한 소공동체. 그 안에는 과연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어떤 맹아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소공동체’는 1600여 년 이상 교회 역사를 지배했던 성직 중심의 경직된 교회를 탈피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적 두 기둥인 ‘참여하는 교회’, ‘친교 공동체로서 교회’ 정신을 사목적 현실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사목> 2005년 6월호. 전원 신부, ‘통합 사목 모델로서 소공동체 사목 이해’ 중에서)

▲ 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 전원 신부. 전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고 교황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에서 말하는 교회상을 구현할 대안은 바로 소공동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후, 그 정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 ‘작은 교회 공동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열매 맺었다.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교회, 계시, 사목 헌장 등 4개 헌장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회는 그 이전과 다르게 세상 안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찾아낸 것이다.

전원 신부는 오늘 한국 교회에서 ‘소공동체’라는 용어로 자리 잡았지만, 기실 원래 용어, 그 중에서도 ‘기초’, ‘작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용어에는 교회의 기초 세포, 그리스도의 기초로 돌아감, 교회가 사회의 기초인 가난한 사람들과 평신도에 속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전 신부는 “소공동체를 만나면서 교회를 제대로 느끼고 맛봤다”면서 “소공동체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사제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어진 권한과 권위를 추구하는 사목을 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소공동체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초대할 수 있고,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교회됨’의 가장 기초는 소공동체다. 수직적 구조와 기복신앙의 모습이 주로 보였던 교회 안에 기초 공동체가 활성화되면, 복음의 빛 안에서 세상을 식별하고 바라볼 수 있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공동체, 상당히 진보적인 지향을 두고 있다
우선적으로 사제의 권위 내려놓아야 가능

전원 신부는 소공동체가 사제 중심에서 평신도, 본당에서 다양한 삶의 자리 그리고 세상의 가치에서 복음으로 중심이동을 하는 것이라면서, 바티칸공의회 헌장에 따라 교회를 재해석하고 초기 공동체를 구현하는 일종의 ‘파격’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조직의 개편이 중요하다면서, “가톨릭교회의 위계와 공동체성을 균형있게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가 가진 제도성이 있죠. 교황, 주교, 사제로 내려오는 위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위계는 ‘군림이나 다스림이 아니라 봉사’라는 공의회 정신으로 봐야죠. 위계만 강조하면 공동체성과 친교를 잃게 됩니다. 위계와 공동체성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 둘 간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전 신부는 현재 교회 안에 구성된 구역과 반 단위를 그 예로 들었다. 기존의 장치를 활용하되, 그 위에서 신자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살리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제기동 본당 신부 시절, 이론을 넘어 그 가능성을 체험했고 다른 본당의 사례를 목격했다. 그 덕분에 구역과 반을 잘 활용한다면, 획일적 관리가 아닌 공동체성을 부활시킬 수 있고 교회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제들의 인식 변화’다.

“지금 소공동체를 두고 비판하고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1990년대 초반 도입되던 당시, 너무 준비 없이 밀어붙이다 보니, 주로 사제들 안에서 저항도 생겼죠. 사제들이 주도권을 내려놔야 하는데, 이미 한국 교회는 수직적인 문화에 젖어 있었고 사제 위주의 사목이 쉬우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진짜 교회의 모습인가라고 물으면 그건 아니에요.”

전원 신부는 “소공동체는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뿌리와 같은 이들을 공동체의 중심에 두며, 각자의 은사에 따라 인격적 주체로서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맥락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자리매기고 건강하게 만드는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자들마저 사회운동 참여를 ‘종북’으로 매도하는 현실....뿌리가 없기 때문

전 신부는 최근 사회 현상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원인 역시 신앙의 뿌리, 복음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한 까닭이라고 읽는다. 그는 신자들마저도 사회운동 참여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열 구도로 가는 것은 “교회의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이고 뿌리로부터 사회운동이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눈높이를 낮춰 설득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함께 힘을 받을 수 있다면서, “좋은 가치가 고립되고, 오해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소공동체를 통해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전원 신부는 “복음이 빠지고, 하느님 백성 안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가치는 이데올로기나 신념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사회운동 세력의 희생과 용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교회 기초부터 튼실한 뿌리를 내려서 함께 가야 한다. 복음의 기쁨이 추구하는 바도 결국 사회적 통합”이라고 역설했다.

소공동체, 단지 시작하는 단계일 뿐....
그러나 지금이 가장 에너지가 필요한 시기

소공동체가 시작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그러나 전원 신부는 “여전히 답보상태”라고 솔직한 대답을 내놨다. 그리고 그 원인은 사제 중심의 사목 구조를 그대로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간 다양한 시도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소공동체에 맞는 ‘교회 조직’을 갖추는 것이라는 전 신부는, 조직과 프로그램, 방법론, 이 세 가지를 현장에 접목시키는 것과 사제들이 일방적 권위를 내려놓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모임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의 구역, 반 모임 안에 자치권과 권한을 주는 것도 주요한 변화죠. 기존 소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사제들로부터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비판은 옳지 않아요. 비전을 본 사람이 먼저 해야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출발해야 합니다. 사제가 신자들을 고무하고 공동체를 만들면서 점점 신자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주최로 지난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사목연수. 이 자리는 기존 사제끼리, 평신도 끼리의 연수를 넘어 교회의 모든 주체가 본당 운영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한 자리로 의미를 갖는다. 전원 신부는 이러한 자리에 기꺼이 참여한 이들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복음의 기쁨>과 소공동체.... 교회 쇄신의 큰 동력

전원 신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메시지가 소공동체 방향이나 정신을 실현하는 데 큰 지지를 해준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무엇보다 교회 쇄신 차원에서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쇄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으로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그냥 변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함께 고민하고 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교회 조직도 기존의 방식과 내용, 비전을 새롭게 점검하고 공감대와 소통을 통해 더불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꺼번에 모든 본당이 잘 될 수는 없다. 하나씩 바꾸고 연대하면서 매년 조금씩 앞으로 나가도록 기회를 만들 것”이라면서, “내적 쇄신 없이는 분열만 초래하고 상처만 주고받을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는 저변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 신부는 “소공동체가 가난한 이들을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모든 이가 주체적으로 참여해 삶의 자리를 복음화해 가는 ‘하느님 나라의 가능태’”라는 비전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더디더라도 함께 조금씩 가는 것 자체가 큰 변화일 것이라고 믿는다.

20여년, 소공동체는 오랜 기초 공사의 시간을 거쳐 왔다. 지금껏 고된 노력을 이어온 소공동체들이 벽돌 한 장, 한 장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집의 대들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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