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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 손에 맡겨진 하느님[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12]
황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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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3  10: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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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초 성지 성당에 들어서니 전면의 하얀 성모님 모습이 눈에 띈다. 백합꽃에 둘러싸인 성모의 모습을 표현한 테라코타다. 첫 성탄 구유가 꾸며진 곳이니 어머니가 계시는 것도 당연한 일. 성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아름답다. 순례는 잠시 접어 두고 그이들 뒤에 나도 좀 앉아 있었으면 싶다. 기도가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라면 저렇게 그분 앞에 앉아 있는 일은 자신 안에 하느님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레초 성지 성당 안 ⓒ김선명

1223년 12월, 동방에서 돌아오던 성 프란치스코는 그레초에 사는 조반니 벨리타에게 보름 앞으로 다가온 성탄절을 준비하게 한다.

“그레초에서 우리 주님의 축제를 지내고 싶으면 빨리 가서 내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준비하시오. 우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기가 겪은 그 불편함을 보고 싶고 또한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소와 당나귀를 옆에 두고 어떤 모양으로 짚더미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나의 눈으로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성탄절 밤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초와 횃불을 들고 구유가 차려진 그레초의 동굴에 모여들었고 부제였던 성인은 복음을 노래한 후 주님의 성탄에 대해 설교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 때 말구유에 어린 아기가 누워 있었는데 그 아기를 프란치스코가 다가가 깨웠다고 한다.

구유의 고향답게 이곳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구유가 전시돼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전통적 모습의 구유가 있다. 성모 영보,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들, 이집트로 피난하는 성가정,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임과 같은 성탄 전후의 이야기들도 함께 꾸며져 있는데 조명이 차례로 그 장면들을 비추어 예수님의 탄생이 단순히 그분의 태어남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 예수 성탄. 이탈리아 그레초 성지. ⓒ김선명

   
▲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 이탈리아 그레초 성지. ⓒ김선명

붉은 빛 아래 드러나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살해 장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사나운 표정의 군인이 한 손으로 넘어진 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거머잡고 다른 손으로는 칼을 겨누고 있다. 생명은 죽음이 기다리는 땅에 온다. 그리고 생명은, 하느님은 그 모든 위협과 공포, 고통을 사신다. 교회는 성탄 팔부 축제 중에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를 기념하지만 그것이 단지 이천 년 전만의 일일까.

나는 죽었어요, 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나는 죽었어요. 어린 아이인 나는
굴뚝을 지나 바람 속에,
지금 바람 속에 있어요.

아우슈비츠엔 흰 눈이 덮였고
겨울의 추운 날
연기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요.
지금 나는 바람 속에
바람 속에 있어요.

아우슈비츠엔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거대한 침묵만이 떠돌고
이상도 하지요,
이 바람 속에서도 나는
아직 웃을 수가 없어요.
아직 웃을 수가 없어요.

나는 알고 싶어요,
사람이 어떻게 제 형제를 죽일 수가 있을까.
우리는 수백 만
여기 바람 속에 먼지가 되어
먼지로 날고 있어요.

대포의 굉음 다시 울리고
야수 같은 인간의 마음
아직도 피에 굶주려
다시 우리를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내요.
다시 우리를 날려 보내요.

나는 알고 싶어요.
언제나 사람들은 배우게 될까,
형제를 죽이지 않고 사는 법을.
그리고 바람은 언제나 편히 쉬게 될까.
바람은 언제나 편히 쉬게 될까.

이탈리아의 록 밴드 노마디(nomadi)가 부른 ‘바람 속 아이의 노래(La canzone del bambino nel vento)’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태어나던 무렵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동방 박사들 이야기를 듣고 왕좌를 잃을까 두려워 저지른 일이었다. 아우슈비츠든 중동이든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사는 땅에서는 마찬가지다. 권력과 재물, 힘을 탐하는 이들은 어디서나 제 가진 것 잃을까 두려워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복음서에서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 전시관에 있는 구유들. 이탈리아 그레초 성지. ⓒ김선명

   
▲ 전시관에 있는 구유들 ⓒ김선명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희망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그 생명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내 안에, 우리 안에 태어나시는 하느님을 돌보는 일이 바로 이 손에 맡겨져 있다. 그레초의 동굴 속, 첫 구유 앞에서 아기 예수를 안아 든 성인의 마음속 생각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클릭 -> 노마디(nomadi)의 ‘바람 속 아이의 노래(La canzone del bambino nel vento)’ 듣기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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